삶의 재앙이 만든 초인간적 상상 ‘도깨비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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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재앙이 만든 초인간적 상상 ‘도깨비 설화’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12.18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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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⑱ 일연 『삼국유사』…민중, 욕망하는 삶의 세계Ⅳ

[한정주=고전연구가] 역병, 홍수, 가뭄, 지진, 사고, 전쟁 등 재앙은 도무지 예측할 길 없이 갑작스럽게 우리의 삶에 찾아든다.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재앙 앞에서 우리는 대개 신비로운 힘과 기이한 수단에 의지해 이 재앙을 물리치고자 한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도깨비 설화’는 이러한 배경에서 창작된 이야기이다. 즉 예측할 길 없이 갑작스럽게 삶에 찾아드는 재앙을 물리칠 초인간적 능력을 가진 존재에 대한 민중의 갈망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바로 ‘도깨비 설화’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깨비의 이미지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도깨비 ‘비형랑’은 오히려 귀신의 재앙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주는 존재이다. 인간의 힘으로 물리칠 수 없는 사악한 귀신을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닌 도깨비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이 만든 이야기가 ‘비형랑 설화’라고 하겠다.

"비형은 왕의 명령을 받들어 귀신들에게 돌을 다듬게 하여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다. 그래서 그 다리를 귀교(鬼橋)라고 불렀다. 왕이 또 물었다. ‘귀신들 중에서 인간 세상에 나와 정치를 도울 만한 자가 있느냐?’ 비형이 대답했다. ‘길달이란 자가 있는데 나라의 정사를 도울 만합니다.’ 왕이 말했다. ‘데려오너라.’ 이튿날 비형이 길달과 함께 나타나자, (왕은) 그에게 집사의 벼슬을 내렸다. 길달은 과연 충직하기가 세상에 둘도 없었다. 이때 각간 임종에게 자식이 없었으므로 왕은 길달을 대를 이을 아들로 삼게 했다. 임종이 길달에게 흥륜사 남쪽에 누문을 짓게 하자, 길달은 매일 밤 그 문 위에 가서 잤다. 때문에 이름을 길달문이라 했다. 하루는 길달이 여우로 둔갑해 도망치자 비형은 귀신을 시켜 붙잡아 죽였다. 그래서 귀신들은 비형의 이름만 듣고도 무서워 도망쳤다. 그때 사람들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성스러운 임금의 넋이 아들을 낳았으니,
비형랑의 집이 여기로세.
날뛰는 온갖 귀신들이여,
이곳에는 함부로 머물지 마라.

민간에서는 이 가사를 써 붙여 귀신을 쫓곤 한다."(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기이 제1」 ‘도화녀와 비형랑’, 2008, p96〜97)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처용 설화’ 역시 ‘비형랑 설화’와 유사한 맥락에서 만들어진 도깨비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설화 속에 등장하는 귀신은 인간의 삶에 갑작스럽게 찾아든 재앙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본다면 민중의 욕망이 어떤 의미를 담아 ‘도깨비 설화’를 만들었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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