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주=고전연구가] 현실 세계에서 민중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삼국유사』에는 현실 세계의 고통을 종교의 힘에 의지해 구원받고자 하는 민중의 욕망이 만든 설화가 많이 등장한다. 불교의 극락세계에 기대어 빠져나올 길 없는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나 내세의 구원을 갈망하는 대표적인 불교 설화가 ‘월명사의 제망매가’ 설화와 ‘계집종 욱면’ 설화이다.
월명사는 화랑에 소속된 낭도승(郎徒僧)이다. 낭도승 중에는 신라의 전통 시가(詩歌)인 향가(鄕歌)의 달인이 많았다. 월명사 역시 향가의 대가였다. 월명사에게는 사랑하는 누이동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 누이동생이 일찍 죽었다.
피붙이와의 사별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가 겪어야 할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이다. 슬픔을 가눌 길 없던 월명사는 향가를 지어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잃은 고통을 달랬다. 그 향가가 바로 그 유명한 ‘제망매가(祭亡妹歌)’이다.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 있으니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어찌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나
도를 닦으며 기다리련다.”(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월명사의 도솔가’, 2008, p535)
‘미타찰’은 아미타불의 국토라는 뜻으로 곧 극락세계를 뜻한다. ‘제망매가’는 월명사가 누이동생과 사별한 현세의 고통을 내세의 만남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갈망을 담아 지은 것이다. 그것은 월명사 개인의 욕망이 아닌 모든 시대 민중의 욕망이기도 하다. 월명사의 제망매가 설화가 사라지지 않고 500여년이 지난 일연의 시대까지 민중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었던 이유이다.
신라의 불교는 왕과 귀족 등 지배계급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불교를 활용했다. 심지어 그들은 내세의 구원 즉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현세의 고통을 잊고자 갈망하는 민중의 욕망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중들은 온 힘을 다해 내세의 구원, 곧 극락세계를 갈망하며 기원했다. 『삼국유사』「감통 제7」에 실려 있는 ‘계집종 욱면이 염불하여 극락으로 떠오르다’는 제목의 이야기는 지배계급의 방해와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내세의 구원을 갈망하는 민중의 욕망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설화이다.
경덕왕 때 남자 귀족 수십 명이 극락세계를 기원하며 미타사를 짓고 1만일을 약속하는 기도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이 기도모임에는 아간(阿干) 귀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욱면은 귀진의 집에서 일하는 계집종이었다. 주인을 따라 절에 간 욱면은 절의 뜰 가운데 서서 스님을 좇아 염불했다.
그런데 귀진은 계집종 욱면의 염불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하찮은 계집종 주제에 감히 극락세계를 기원하며 염불하는 것을 귀진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욱면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힐책하면서 매일 곡식 두 섬씩 주고 하룻저녁 내내 찧도록 했다. 염불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욱면은 부지런히 곡식을 찧어 초저녁에 모든 일을 마치고 절로 돌아와 밤낮으로 염불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심지어 욱면은 “절 뜰의 좌우에다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어 새끼줄로 꿴 다음 말뚝 위에 매달아 합장하고 좌우로 흔들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 순간 욱면의 정성에 감동한 하늘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삼국유사』는 계집종 욱면에게 일어난 하늘의 기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때 하늘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욱면 낭자는 불당으로 들어가 염불하라.’ 절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계집종에게 권유하여 법당 안으로 들어가 이전과 같이 정진하게 했다. 얼마 후 서쪽 하늘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자 계집종이 솟아올라 지붕을 뚫고 나갔다. 서쪽 교외에 가 육신을 버리고 참모습〔眞身〕을 드러내더니 연화대에 앉아 큰 빛을 내며 천천히 가 버리자 공중에서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불당에는 지금까지도 욱면이 뚫고 나간 구멍이 있다고 한다.”(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감통 제7」 ‘계집종 욱면이 염불하여 극락으로 오르다’, 2008, p519〜520)
‘계집종 욱면’ 설화는 신분 높은 왕과 귀족만 극락세계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하찮은 신분이라고 해도 참된 믿음만 있다면 누구라도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욱면은 오로지 진실한 신앙심에 의지해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나 내세의 구원을 얻었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가 어디에 있겠는가.
신라 사회에서 가장 신분이 낮고 천한 계집종조차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세상사람 모두가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