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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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이유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1.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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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58) 벌레가 간절하게 새벽녘까지 울다

원중거의 시에 다음과 같은 시구가 있다.
벌레가 새벽녘까지 간절하게 우네     鳴蟲懇到晨
‘간절하게’라는 한 글자에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다. 원나라 오징의 시에 다음과 같은 시구가 있다.
매미가 가을도 모르고 간절하게 우네 
蟬未知秋懇懇吟
원중거와 오징의 시구는 그 의미가 동일하다.
『청비록 1』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정민 교수는 『한시 미학 산책』에서 “시는 시인이 짓는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모든 사물은 자기 나름의 소리와 색깔과 감정과 경계를 갖추고 있으며 시인은 단지 시적 언어로 그것들을 형상화할 뿐이라는 얘기다.

정민 교수는 다시 말한다. “이때 시인은 사물의 몸짓을 언어로 전달하는 매개자일 뿐이다.”(정민 지음, 『한시 미학 산책』, 휴머니스트, p22, 2010.)

하지만 비록 천지만물이 시를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몸짓을 한다고 해도 시적 감수성과 시적 사유가 없다면 어떻게 시를 지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시의 탄생은 사물의 몸짓+시적 감수성 혹은 시적 사유+시적 언어가 결합할 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 이 시에서 벌레 소리와 매미 울음은 ‘사물의 몸짓’이다. 모든 감각과 정신이 벌레 소리와 매미 울음에 집중되어 있는 상태는 ‘시적 감수성 혹은 시적 사유’다.

그리고 ‘간절하게’는 시적 언어다. 밤낮도 잊은 채 울어대는 벌레와 계절도 잊은 채 울어대는 매미의 몸짓이 사람으로 하여금 도저히 시를 짓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벌레 소리와 매미 울음이 ‘간절하게’라는 시적 언어로 포착되는 바로 그 순간 마침내 시가 탄생한다.

‘간절하게’라는 단 한 마디 시적 언어 속에 벌레 소리와 매미 울음 그리고 시인의 시적 감수성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시적 언어의 함축성’, 그것은 좋은 시의 필요충분조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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