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첨단산업의 수출경쟁력이 2022년부터 중국에 역전당한 가운데 첨단기업의 연구개발비마저 중국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나 경쟁에서 계속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는 28일 한국과 중국의 첨단산업 수출입 데이터와 첨단기업 재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경협이 첨단산업에 한정해 수출경쟁력의 지표가 되는 무역특화지수를 산출한 결과 2024년 1~8월 기준 한국은 25.6, 중국은 27.8로 나타났다. 중국의 첨단산업 무역특화지수는 10년 전인 2014년 대비 16.0포인트 상승하며 첨단산업의 수출경쟁력이 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은 4.3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첨단산업 무역특화지수는 2014년 29.9로 중국(11.8)보다 크게 높았지만 2022년을 기점으로 역전당해 3년 연속으로 중국을 밑돌았다.
2024년(1~8월) 첨단산업별 무역특화지수를 산출했을 때 중국은 ‘전기’와 ‘기계’에서 이미 한국보다 수출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와 ‘모빌리티’ 산업에서 한국은 2014년 대비 각각 19.4포인트, 5.3포인트 하락한 반면 중국은 각각 26.7포인트, 64.0포인트 상승하며 대조를 이루었다.
특히 중국은 ‘모빌리티’ 산업이 2018년부터, ‘화학’ 산업이 2022년부터 무역특화지수가 플러스(순수출)로 전환돼 교역 시장에서 한국과 본격적인 경쟁 구도에 진입했다고 평가됐다.
한경협이 양국 기업의 재무제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3년 한국 첨단기업은 연구개발비에 510억4000만 달러를 지출했으며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3.5%에 달했다. 같은 해 중국 첨단기업의 연구개발비는 2050억8000만 달러로 한국의 약 4배 규모에 달했으며 매출액 대비 비중(4.1%)도 한국보다 높았다. 연구개발비 증가율을 보면 한국은 2013년 대비 연평균 5.7%를 기록한 데 반해 중국은 연평균 18.2%를 기록하여 한국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협은 한국이 첨단산업에서의 글로벌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 수준보다 투자 규모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 첨단기업이 현재보다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현행 제도의 정비와 다방면 지원의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에서는 국가전략기술 관련 연구개발과 사업화시설 투자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는 올해 말로 일몰될 예정이다. 그러나 첨단산업은 투자부터 수익 실현까지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세액공제 혜택의 중단은 장기적인 투자 결정에 제약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한경협은 일몰 기간의 연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의 국가전략기술은 산업 카테고리인 ‘분야’를 선정하고 각 분야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술에 한정해 지정 요건을 적시한 ‘기술’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지정된 7개 분야만으로는 기술혁신의 가속화로 다양한 첨단산업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한경협은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신산업인 인공지능, 방산, 원자력 등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에서는 국가전략기술을 지정할 때 분야별 세부 요건을 법령에서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행 ‘포지티브’ 지정 방식에 따르면 첨단기술이 아무리 혁신적이어도 법령의 지정 요건에 포함되지 않으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에 한경협은 지정 요건 대신 예외 요건을 적시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법령이 기술혁신에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행 세액공제 제도에서는 적자가 발생해 납부할 세금이 없으면 즉시 혜택을 받을 수 없고 향후 10년 내로 이익이 발생하면 이월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첨단산업은 경쟁이 치열해 안정적인 이익 창출이 어렵고 투자가 단기간 내 이익으로 이어지기도 불확실한 탓에 현행 제도에서는 지원의 실효성이 제한적일 수 있다. 이에 한경협은 직접 환급 제도를 도입하거나 이월공제 기간을 연장할 것을 제언했다.
현행법에서는 시설투자 세액공제의 대상을 ‘기계장치 등의 유형자산’과 ‘사업화시설’로 한정하고 있어 토지·건물 등의 유형자산과 연구개발 시설·장비는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첨단산업은 토지·건물이 총 시설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30~50%)이 높고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기술혁신이 필수적이다. 한경협은 이러한 첨단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시설투자 공제 대상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한국 기업으로서는 중국 기업과 비슷한 호흡으로 뛰어도 규모가 작아 첨단산업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국내 첨단산업의 경쟁력이 중국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세액공제와 더불어 투자보조금 지원, 전력·용수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정책적 부스터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