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詩의 온도]㉞ 중심과 주변
조선 역시 좋은 점 있으니 朝鮮亦自好
어찌 중국만 모두 좋겠는가 中原豈盡善
중심과 주변의 구별이 있다고 해도 縱有都鄙別
모름지기 평등하게 보아야 하네. 須俱平等見
『아정유고 4』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는 산문집 『선귤당농소』에서 말똥구리의 ‘말똥’과 용의 ‘여의주’의 가치가 동등하다는 선언을 통해 존귀(尊貴)와 미천(微賤)의 이분법적 구도를 전복하고 해체해 버렸다.
그리고 이 시에서 이덕무는 다시 중국과 조선은 평등하다는 선언을 통해 중화와 오랑캐의 구도를 전복하고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을 해체해 버린다.
중화와 오랑캐,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이 전복되고 해체되자 우월과 열등, 선진과 후진,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 역시 전복되고 해체된다.
중화와 오랑캐,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이 전복되고 해체되어 버린 자리에는 이제 차별을 넘어선 차이의 가치, 동일성을 넘어선 다양성의 가치, 획일성을 넘어선 다원성의 가치 그리고 균등·동등·평등의 가치가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 나간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가 만들어 나간 새로운 영토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중국적인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모방과 맹목적인 숭상을 넘어선 ‘조선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재)발견’이다.
조선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재)발견이 18세기 조선을 ‘진경 시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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