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하고 검푸른 한강 가 漢漠滄江邊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 높은 봉우리 넘어가네 閒雲度高岑
그 사이 숨어 사는 고상한 선비 高人隱其間
나지막한 집 거문고 둥둥 희롱하고 衡門弄素琴
밭 일구는 농부 고기 낚는 어부 어울려 園丁與溪父
날마다 스스로 서로를 찾아다니네 日日自相尋
푸른 산기슭 약초 캐고 採藥靑山麓
푸른 산골 물가 낚싯대 드리우네 垂釣碧澗潯
산새도 자신의 뜻 있다는 듯 山鳥亦有意
짹짹대며 맑은 소리 보내주네 送好音
큰 소리로 노래 한 곡조 부르고 나자 浩歌一唱罷
그윽한 흥취 너무나 상쾌하네 幽興爽然深
화창한 바람 때 맞춰 솔솔 불어오니 和風有時來
나무에 기대 가슴을 활짝 풀어헤치네 倚樹披蘿襟
밝은 해 초가집 드리우니 白日下茆屋
섬돌 꽃, 그늘 질 듯 堦花欲生陰
청명한 모래사장 갈매기 오락가락 晴沙鷗來去
따뜻한 강 물결 오리 떴다 잠겼다 暖波鴨浮沉
온갖 풍경 사계절 맞춰주니 萬象供四時
감상은 오직 내 마음 대로 攬賞惟吾任
『영처시고 1』 (재번역)
칠석 이튿날 벗들과 삼청동 읍청정에서 놀며
살랑살랑 검양옻나무 瑟瑟鴉舅樹
연못 속 돌 쌓고 심었네 疊石池裏裁
가을 빛 거꾸로 비춰 맑고 倒寫秋暉凈
연못 빛 나무 위 올라오네 池光上樹來
헤엄치는 아이 오리와 내기하니 泅兒賽鳧兒
작은 물웅덩이 흙탕물 일어나네 斛水斗泥爛
잠자리 몸짓하며 날아다니고 蜻蜓弄頭翅
나타났다 사라졌다 머리 적시네 時掠出沒丱
돌의 정기 모인 이곳 石氣之所鍾
나무 수척하고 샘 향긋하네 樹癯而泉馨
가을 시인의 붓 억세 秋士筆倍勁
그 소리 지극히 깊고 맑구나 其音盡泓渟
곡식 창고 너머 눈길 보내니 送目倉屋頭
가을 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네 秋雲朶皆亞
비늘 구름 사이 하늘 보이니 罅靑鱗鱗裏
시 짓고 싶은 마음 문득 곱고 예쁘네 詩心忽裊娜
옷에 스민 풀 향기 풍기고 草香生衣履
나무 그림자 수염 지나가네 樹影度鬢鬚
아득한 백악산 찾아가기 어려워 白岳遙難即
붉은 단청 난간 멍하니 앉아있는 나 紅欄坐著吾
늦여름 초가을 마주치니 夏尾秋頭接
말끔히 갠 날 며칠째 新晴才數日
서늘한 회화나무 숲 한 마리 매미 一蟬涼槐多
상쾌하게 일곱 시인 모였네 脩然作者七
『아정유고 1』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어느 순간 혹은 어떤 때 시를 써야 좋은 시를 얻을 수 있을까. 시흥(詩興)이 이는 대로 혹은 시정(詩情)이 일어나는 대로 지은 시가 가장 좋다.
무엇인가에 도취되어 마음에서 일어나는 시적 흥취(興趣)를 시흥이라고 한다. 무엇인가를 마주 대할 때 가슴에서 일어나는 시적 정취(情趣)를 시정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흥과 시정은 모두 시를 짓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럼 언제 시흥과 시정이 일어날까. 이덕무는 『이목구심서』에서 이 순간을 이렇게 말한다.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시흥(詩興)으로 어깨가 산처럼 솟아오르고 눈동자에는 물결이 일렁거리며 두 뺨에는 향기가 풍기고 입에는 꽃이 활짝 피어난다.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때 맑고 밝은 벗들을 맞이해 종이 두루마리를 벌려놓으면 시정(詩情)을 북돋아 도울 것이다.”
시흥과 시정이 일어날 때 쓴 시가 좋은 까닭은 무엇인가. 이 순간만큼은 가식과 인위가 섞이지 않은 자연스럽고 진솔한 시가 나오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짓고 진솔하게 짓는 것 보다 더 좋은 시가 어디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