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울분, 가을 기운으로 더해질까 두려운데 孤憤或恐秋觸
헛된 명예, 벗들의 조롱 어찌 원망하랴 浮名寧怨朋譏
모든 일 밝은 이치로 해결할 수 있으니 萬事可以理遣
일생을 옛것과 더불어 어긋나지 않게 살리라 一生無與古違
『영처시고 2』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헛된 명예에 얽매이지 않고 옛것을 벗 삼아 자유롭게 살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다.
소설이 스토리를 중시한다면 시는 메시지를 중시한다. 인물, 사건, 줄거리 등 일정한 이야기의 구성을 갖춰야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는 메시지만 있어도 된다.
그래서 시 가운데에는 한 줄만으로도 충분한 시가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 하이쿠가 그렇다. 하이쿠의 대가 마쓰오 바쇼의 시를 읽어보자.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울음소리”
비록 한 줄의 시(詩)지만 마쓰오 바쇼는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다 담고 있다. 시를 읽는 순간 독자는 ‘적막한 여름 산 풍경 속 맑은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 하상욱의 『시밤』 속 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12글자의 시 속에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의 메시지를 다 담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덕무가 시의 영혼이라고 말한 성령(性靈), 곧 시인의 뜻, 기운, 감정, 느낌, 생각 등이 곧 시의 메시지다.
메시지가 없는 시는 영혼이 없는 시다. 영혼이 없는 시는 아무리 잘 지었다고 해도 죽은 시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