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봄날 햇볕 온갖 나무 꽃 피고 一年春光花萬樹
빈산 흐르는 물 얼굴에 맑게 비치네 空山流水淨照面
향기로운 풀 오려낸 듯 나비는 꽃가루 남기고 芳草如剪蜨遺粉
고요한 선비 마음 밝아 얽매인 것 없네 靜士心朗無所罥
연기 자욱한 언덕 검은 암소 음메음메 煙坨烏牸牟然吼
천진스레 제멋대로 발굽질 하네 自任其眞蹄自遣
『아정유고 2』 (재번역)
붓을 달려 짓다
사람들은 가을을 슬퍼하지만 나는 가을이 좋네 人自悲秋我悅秋
나의 근성 엄숙하고 서늘해 가을과 같기 때문이네 性根嚴冷也相猶
아주 가까운 거리에 탑 겨우 보이고 百弓距道纔迎塔
매우 좁은 마당이지만 누각 짓기 마땅하네 十笏量庭恰置樓
이름 높은 선비 금전 속의 삶 부끄러워하고 名士元羞錢孔隱
통달한 사람 하나같이 술집 유람 즐거워하네 通人一閱酒場遊
글 읽는 선비 기운과 습성 닳아 없애려면 書生有氣聊磨耗
검푸른 강 튼튼한 돛단배 빠르게 몰지어다 快駕滄江健帆舟
『아정유고 2』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이덕무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만나 얘기해 보면 이덕무에 대해 대부분 따사한 봄날 햇볕처럼 온화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실제 이덕무는 서늘한 가을 서리처럼 엄숙함과 엄정함을 지닌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근성이 엄숙하고 서늘해 가을과 같아서 다른 어떤 계절보다 가을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덕무는 봄날 햇볕 같은 이미지와 가을 서리 같은 이미지 중 어떤 것을 더 선호했을까.
사람은 봄날 햇볕처럼 따뜻하고 온화해야 넓은 도량을 갖출 수 있다. 또한 가을 서리처럼 엄숙하고 엄정해야 높은 절개를 지킬 수 있다. 사람이든 일이든 품을 때는 봄날 햇볕처럼 따뜻해야 하지만 끊을 때는 가을 서리처럼 서늘해야 한다.
천하의 천한 일인 똥을 날라 먹고 사는 엄행수의 덕을 높여 칭찬하고 벗의 정을 나눈 이덕무에게서 봄날 햇볕 같은 넓은 도량을 읽을 수 있다면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출세를 멀리한 채 처사와 은사의 삶을 추구하는 이덕무에게서는 가을 서리 같은 높은 절개를 엿볼 수 있다.
이덕무가 생각한 인격의 궁극적인 경지는 넓은 도량과 높은 절개를 함께 지니는 것이다.
가을을 좋아해 가을 시를 많이 남긴 이덕무가 그 못지않게 봄을 읊은 봄 시를 많이 남긴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