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빗속 술 취해 장남 삼아 쓰다
상태바
궂은 빗속 술 취해 장남 삼아 쓰다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8.18 0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덕무 詩의 온도]㊴ 삶의 냄새

대지는 깜깜 하늘은 구멍 열흘 넘게 앉아              地濃天漏坐逾旬
집 주위 그윽한 숲 빗발 내리쳐 다리 적시네           圍屋幽脩雨脚臻
호방한 기상 자부하고 천하의 선비로 여겼으나         負氣自疑天下士
답답한 이 몸 돌이켜보니 해동의 백성일 뿐            仄身還是海東民
시인의 마음, 가을 소리에 순수하고                   詩腸大抵秋聲正
진리의 맛, 밤의 기운에 진솔하네                     道味伊來夜氣眞
서로 만남 어렵지 않고 맺은 정분 좋으니              逢著無難交契好
이따금 책 속에서 마음 맞는 사람 만나네              書中往往會心人
『아정유고 2』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사람에게는 살아오면서 켜켜이 배어 있는 삶의 냄새가 있다.

박지원이 지은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서 이덕무는 똥을 치우는 일을 하지만 덕(德)을 갖춘 엄행수를 가리켜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깨끗한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또한 엄숙한 도학자인 척 하면서 입만 열면 도덕이 어떻고 윤리가 어떻고 하지만 재물과 권력에 눈이 멀어 온갖 추잡한 짓을 저지르는 이를 가리켜서 깨끗한 곳에 있으면서도 더러운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더러운 가운데에도 더럽지 않는 것이 있고, 깨끗한 가운데에도 깨끗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 사람에게 배어 있는 삶의 냄새란 그 사람이 어느 곳에 자리하고 어떤 지위에 있고 어떻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시에 배어 있는 삶의 냄새는 어떠한가? 마치 맑고 서늘한 가을밤의 기운처럼 상큼하면서 상쾌한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것은 욕심 없고 순박하며 진솔하고 담백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냄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