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온도…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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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온도…냉정과 열정 사이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5.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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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⑳ 봄날 작은 모임

해 길고 봄 깊어 나무문 고요한데        日白春靑靜板扉
높은 누각 모임 인기척 별로 없네        高樓讌坐客跫稀
산들산들 바람 눈 흐릿하게 스쳐 가고    輕颸剪剪經花眼
부슬부슬 가랑비 나비 날개 적시네       微雨絲絲褪蝶衣
하늘하늘 아지랑이 그윽이 풀 덮고       娿娜煙能幽草覆
울울창창 나무 예쁜 새 돌아오기 알맞네  丰茸樹可艶禽歸
듬성듬성 발 시원한 기운 꽉 찼으니      疏簾滿貯蕭閑氣
술이랑 사양 말며 봄빛에 보답하세       報答韶光酒莫違
『아정유고 3』 (재번역)

가을날 책을 읽다가

높고 맑은 가을 기운 나무가 먼저 아는데     泬寥秋令樹先知
따뜻함과 서늘함 모두 잊고 멍청이가 되었네  任忘暄涼做白痴
벽은 고요해 온갖 벌레 시끄럽게 울어대고    壁靜萬蟲勤自語
발은 비어 한 마리 새 익숙하게 서로 엿보네  簾虛一鳥慣相窺
돈 욕심 버리기를 더럽힐 것처럼 여기니      抛他錢癖如將浼
나를 책벌레라 불러도 사양하지 않으리       呼我書淫故不辭
『아정유고 2』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고 가는 게 삶이다. 물론 냉정과 열정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온도가 존재한다. 따뜻함, 미지근함, 뜨거움, 시원함, 서늘함, 차가움 등등.

냉정보다는 온화(溫和)함이 좋듯이 뜨거움보다는 따뜻함이 좋다. 열정보다는 평정(平靜)함이 좋듯이 차가움보다는 서늘함이 좋다.

이덕무의 삶과 글에도 따뜻함과 서늘함이 공존한다. 사람과 세상과 자연 만물을 바라볼 때는 따뜻함이 느껴지다가도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출세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뜻을 지킬 때는 서늘함이 느껴진다.

사람은 따뜻할 때는 마땅히 따사한 봄날처럼 따뜻해야 하고 서늘할 때는 마땅히 가을 서리처럼 서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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