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풍경은 모두 그림 동산이니 落景無非畫苑
구름 저 끝엔 새빨간 연지를 발랐구나 雲頭抹過臙脂
샛노란 고목 물고기 머리뼈 같고 明黃老樹魚迂
연초록빛 먼 산은 부처 머리 닮았네 細綠遙山拂髭
연못 속 오리 날개 하얗고 粉羽塘中右軍
밭두렁 위 순무 붉은 꽃 피었네 紫花塍上諸葛
석양에 서늘한 연기 나타났다 사라졌다 明滅寒煙夕陽
돌아가는 까마귀 나무 끝에 오똑하게 앉았네 歸鴉端坐烏勃
『아정유고 3』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시에는 색깔이 있는가. 당연히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색깔이 있는데 어떻게 시에 색깔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덕무는 말한다.
“글에는 색깔이 있는가. 『시경』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비단 저고리에는 엷은 덧저고리를 걸치고 비단 치마에는 엷은 덧치마를 걸치네’라거나 ‘검은 머리 구름 같아. 덧댄 머리 필요 없네’라는 시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색깔에 대한 백탑시사의 미학은 이덕무의 절친인 박제가의 시에 잘 드러나 있다.
“붉을 홍(紅) 한 글자만을 가지고 / 널리 눈에 가득 찬 꽃을 일컫지 말라 / 꽃수염도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으니 /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하네.”
붉다는 한 가지 색깔로 세상 모든 꽃을 단정 짓지 말라는 박제가의 미학은 곧 이덕무의 미학이기도 하다.
자연과 사물에 대한 세심한 시선과 꼼꼼한 관찰과 정밀한 묘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덕무의 시에서는 색깔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