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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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으면…”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9.25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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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⑯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질투·분노·복수는 나의 무기Ⅲ
이아손과 메데이아. 존 윌리암, 1907, 워터하우스.
이아손과 메데이아. 존 윌리암, 1907, 워터하우스.

[한정주=고전연구가] 이아손과 메데이아 사이에서 이 관계를 이끄는 힘과 자원과 권한을 갖고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바로 이아손이다. 메데이아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이아손이고,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이아손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지속하거나 혹은 단절할 수 있는 권한과 권력은 이아손에게 있지 메데이아에게 있지 않다. 메데이아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과 권력이 갖고 있지 않다. 메데이아에게는 이아손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자원도 없기 때문이다.

메데이아가 이아손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이아손이 메데이아를 사랑하고 있을 때뿐이다. 이아손이 메데이아를 사랑하는 한에서만 그녀는 이아손에게 강자이다.

하지만 이아손의 마음은 이미 메데이아를 떠나버렸다. 이 경우 이아손은 모든 것을 가진 강자이고 메데이아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 약자일 뿐이다. 그래서 메데이아는 자신의 가치 기준과 판단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이아손에게 이렇게 탄식한다.

“그래요. 전에 사랑받던 나는 아무런 권한도 없어요.”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메데이아』, 숲, 2010, p336)

이런 상황에서 메데이아에게 ‘질투’라는 감정은 이아손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질투의 감정만큼은 온전히 그녀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칠거지악’을 여성의 미덕으로 내면화한 조선 시대 여성처럼 질투라고 하는 자기 소유의 감정마저 이아손에게 내맡긴다면 이아손에게 짓밟히면서도 영원히 복종하는 노예로 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메데이아에게 질투는 곧 더 이상 이아손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삶의 무기’가 된다.

따라서 메데이아의 질투는 부끄럽거나 혹은 수치스러운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강자에게 맞서는 약자가 가져야 할 당연한 혹은 정당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아손을 향한 메데이아의 분노와 복수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비 신부 글라우케의 아버지 크레온이 떠나자마자 메데이아를 찾아온 사람은 그녀의 남편 이아손이었다.

이아손은 남성중심의 권력사회가 만든 가치 기준과 판단에 복종할 것을 메데이아에게 강요한다. 이 순간 이아손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약자에게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는 강자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격렬한 분노가 구제할 길 없는 악이라는 것을 지금 처음 안 것이 아니라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소. 통치자들의 명령을 고분고분 참고 견딘다면 당신은 이 나라와 이 집에서 살 수도 있을 텐데, 허튼소리를 늘어놓다가 나라에서 추방되는 신세가 되었구려.”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메데이아』, 숲, 2010, p326)

이아손은 메데이아에게 왜 자신이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 역시 약자를 자신의 가치 기준과 판단에 따르도록 길들여 순종하고 복종하게끔 하려는 강자의 변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지금 아내로 맞는 공주와 결혼하는 것은 여색을 탐해서가 아니라 앞서도 말했듯이 당신을 구하고 내 자식들에게 왕족의 피를 받은 형제자매를 낳아주어 우리 집안의 울이 되게 하려는 것이란 말이오.”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메데이아』, 숲, 2010, p332)

만약 메데이아가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을 해소하는 보통의 경우 곧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과 판단에 예속, 복종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질투, 원한, 증오, 분노의 감정을 해소하려고 했다면 이아손의 판단과 계획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아손의 가치 판단과 계획을 받아들였다면 그녀는 영원히 이아손과 예비 신부 글라우케에게 예속되어 복종하는 약자 혹은 노예의 삶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가치 판단과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불행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이아손에게 분노를 폭발한다. 자신에게 해악을 끼친 이아손의 행위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너무도 당연한 그리고 정당한 분노이다.

“고통만 안겨줄 뿐인 행복한 생활과 마음을 갉아먹는 부(富)는 내게 필요 없어요.… 이제는 당신 집에도 나는 저주가 될 거예요.… 가세요! 이렇게 집 밖에 나와 지체하는 동안에도 당신은 분명 새 신부가 그리워 안달이 나겠죠. 하지만 장담하건대 당신은 결혼은 하되 두고두고 후회하게끔 결혼하게 될 거예요.”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메데이아』, 숲, 2010, p332, 353)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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