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원한·증오는 어떻게 약자에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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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원한·증오는 어떻게 약자에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9.11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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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⑯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질투·분노·복수는 나의 무기Ⅰ
장프랑수아 드 트로이, ‘메데이아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이아손’, 1742년.
장프랑수아 드 트로이, ‘메데이아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이아손’, 1742년.

[한정주=고전연구가]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섞인 감정”을 니체는 ‘르상티망’이라고 말한다. 간단하게 시기심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이 감정을 가리켜 니체는 약자의 감정이자 노예의 감정이라고 지적한다.

르상티망에 사로 잡힐 경우 사람들은 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복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꾸는 것”이다.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p51)

전자의 경우는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 되는 강자의 가치 기준과 판단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르상티망을 해소하는 태도이다. 후자의 경우는 강자의 가치 기준과 판단을 아예 쓸모가 없거나 별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혹은 자신의 가치 기준과 판단이 강자의 그것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식의 ‘가치 전도(轉倒)’를 통해 르상티망을 해소하는 태도이다.

이 두 가지 반응은 강자와의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는 힘도 없고 자원도 없고 권한도 갖고 있지 않는 약자들이 쉽게 취하는 태도이다.

어쨌든 두 가지 반응 모두 약자는 강자에 대해 무기력한 존재이고 강자에 대한 약자의 관계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르상티망, 즉 강자에게 품는 ‘질투·원한·증오’라는 감정은 아무 힘도 없고 자원도 없고 권한도 갖고 있지 않는 약자가 지닌 ‘삶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와 더불어 그리스 고전 비극 문학을 대표하는 3대 작가로 불리는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질투·원한·증오가 어떻게 약자에게 삶의 무기가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메데이아』는 그리스 신화 속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사랑과 배신 그리고 복수를 둘러싼 잔혹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비극이다. 메데이아는 남편 이아손과 예비 신부 글라우케(코린토스 왕 크레온의 딸)에 대한 질투와 원한과 분노 때문에 글라우케와 크레온은 물론 이아손과 사이에서 낳은 친자식을 살해하는 복수극을 벌인다.

메데이아의 질투·원한·증오 그리고 분노와 복수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짧게나마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사랑과 배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이아손의 아버지는 그리스 이올코스의 왕 아이손이다. 이아손이 어렸을 때 아이손은 아버지가 다른 동생 펠리아스에게 왕권을 빼앗겼다. 장성한 이아손은 숙부 펠리아스를 찾아가 아버지에게 빼앗은 왕권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펠리아스는 이아손의 요구를 들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에 펠리아스는 이아손에게 인간의 힘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한 가지 일을 제안했다. 이방인의 땅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가 소유하고 있는 황금 양모피를 찾아 가져오면 왕권을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아손은 당시 그리스 최고 영웅들과 함께 아르고 원정대를 꾸린 후 흑해 동쪽 끝에 위치한 콜키스에 도착한다. 곧장 콜키스 왕 아이에테스를 찾아간 이아손은 황금 양모피를 달라고 요구한다. 아이에테스는 황금 양모피를 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그 조건이란 “불을 내뿜는 청동 발굽의 황소 두 마리에게 멍에를 얹어 쟁기질을 하며 밭고랑에다 카드모스가 죽인 용의 이빨 가운데 나머지 반을 뿌려 그 이빨에서 자라난 무장한 전사들과 싸워 이긴다면 황금 양모피를 주겠다”(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메데이아』, 숲, 2010, p329)는 것이었다.

이 역시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에테스 역시 이아손에게 황금 양모피를 내줄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이에테스의 요구조건을 따르면 목숨을 잃고, 그렇지 않으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이아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바로 아이에테스의 딸 메데이아였다.

이아손에게 첫눈에 반한 메데이아는 먼저 불을 내뿜는 황소들의 불길에서 그를 지켜줄 고약을 건네준다. 또한 메데이아는 이아손이 용의 이빨에서 자라난 전사들과 싸울 때 그들 사이에 돌을 던져서 서로 죽고 죽이도록 조언까지 해주었다. 결국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도움 덕분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아손이 과업을 해결했음에도 아이에테스는 황금 양모피를 내주지 않았다. 이때 다시 메데이아가 이아손을 도와주었다. 황금 양모피를 지키는 100개의 눈을 가진 용을 잠재울 약을 지어서 건네준 것이다. 결국 메데이아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이아손은 무사히 황금 양모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데리고 아르고 원정대와 함께 그리스로 도망친다.

이올코스로 돌아온 이아손은 숙부 펠리아스에게 황금 양모피를 건네면서 약속대로 왕권을 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펠리아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때 다시 메데이아가 나서 이아손의 복수를 한다. 먼저 메데이아는 펠리아스의 딸들을 찾아갔다. 그녀들 앞에서 메데이아는 나이 든 숫양 한 마리를 토막 낸 다음 끓는 물에 마법의 약초와 함께 넣고 삶았다.

그런데 끓는 물에 삶은 토막 낸 숫양이 멀쩡하게 살아났다. 그것도 어린 숫양으로 말이다. 나이 든 숫양이 어린 숫양으로 둔갑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펠리아스의 딸들에게 메데이아는 달콤한 유혹을 한다. 똑같은 방법으로 늙은 펠리아스 왕을 젊은이로 회춘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메데이아의 유혹에 넘어간 펠리아스의 딸들은 아버지를 토막 내어 끓는 물에 넣고 삶았다. 하지만 메데이아는 마법의 약초를 건네지 않았다. 결국 펠리아스는 회춘은커녕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다. 펠리아스는 죽었지만 이아손은 더 이상 콜키스에서 살 수 없었다. 펠리아스의 아들 아카스토스가 이아손과 메데이아를 이올코스에서 추방했기 때문이다. 이올코스에서 추방당한 이아손과 메데이아가 찾아간 곳은 코린토스였다. 이곳에서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이아손이 출세와 권력의 욕망 때문에 코린토스의 공주 글라우케와 결혼을 결심하면서 메데이아의 행복은 파국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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