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겨울 맛이 나는 날씨다. 초겨울로 자리바꿈을 하면서 싸늘함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차가운 바람 마른 잎들은 우수수 떨어져 휘날린다. 바람의 끝에 납작 엎드린 낙엽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서걱거린다. 쓸쓸하고 스산한 초겨울 산 풍경이다.
서울을 벗어난 가까운 경기도 양주시의 불곡산(佛谷山)은 유양동과 산북동에 걸쳐 있다. 양주의 진산으로 과거엔 불국산(佛國山)이라고도 했으며 해발 470.7m의 작은 산이지만 규모에 비해 암릉이 많아 아기자기한 산행의 묘미를 한껏 즐길 수 있다.
서울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양주역에서 들머리 양주시청까지 1.4km 도보로 15분이 소요된다. 자차를 이용하면 시청 주차장을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주말은 무료, 주중은 10분에 200원의 요금이 적용돼 이용이 편리하다.
양주시청을 들머리로 불곡산의 정상인 상봉과 상투봉·임꺽정봉을 차례로 오른 다음 대교아파트로 내려서기로 한다.
시청 뒷편 불곡산 안내도 옆으로 이어진 나무계단을 따라 발을 옮긴다. 낙엽이 수북한 흙길을 따라 15분쯤 걸으면 의정부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며 조망이 툭 터진다.
산길은 편안한 흙길로 빼곡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능선길 곳곳에는 ‘보루’ 안내판이 서 있어 과거엔 이곳이 사방을 감시하는 초소가 있었던 군사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한 지 30여분 삼각점을 지나자 백화암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온다. 들머리 시청에서 2.4km 저점이다. 백화암 코스는 최단코스지만 경사가 급하고 너덜지대와 깔딱구간이 있어 양주시청을 들머리로 하는 것을 선호한다.
삼거리를 지나 조금 오르면 불곡산 기암 안내판이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다. 팽귄바위·생쥐바위·물개바위·삼단바위·코끼리바위·악어바위·복주머니 바위가 사진과 함께 위치를 안내해주고 있다. 동물이름이 붙은 기암이 많은 산이다.
안내판을 뒤로하고 데크계단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앙증맞은 팽귄바위가 보이며 펭귄바위에서 마지막 데크계단을 올라서면 정상인 상봉(470.7m)이다. 고도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사방으로 시야가 열려있어 조망이 일품이다.
남쪽으로 수락산·도봉산·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며 북쪽으론 임꺽정봉이 멋지게 솟아 있고 양주 들판과 산북동의 평화로운 풍경이 내려다보이며 뒤로는 도락산(440.8m)이 보인다.
불곡산에는 조선 3대 도적 홍길동·장길산과 더불어 임꺽정의 생가터가 백화암 계곡 유양동에 남아있다. 생가터에는 ‘임꺽정 생가보존비’가 있고 그 골짜기를 청송(靑松)골이라고도 한다. 가난한 백성들로부터 착취한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도적질해 다시 나누어준 의적 임꺽정의 곡절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상봉에서 사진 한 컷 남기고 짧게 내려서서 5분 정도 걸으면 상투봉에 오를 수 있다. 평일 한가한 상투봉에서 사방으로 훤한 조망을 누리고 내려선다. 상투봉에서 임꺽정봉으로 가는 길은 화강암 넓은 슬랩지대가 이어지며 좌우론 깎아 세운 듯한 단애로 스릴이 넘치며 기암과 노송이 어우러져 한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급한 암릉 내리막을 10여분 내려가면 부흥사 입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안부. 거리목에는 ‘임꺽정봉 0.2km, 부흥사 0.8km, 상투봉 0.3km’를 안내하고 있다.
이어서 다시 암릉지대를 올라가야 한다. 만만치 않은 경사와 거친 암릉이지만 안전시설이 잘되어 있어 오르는 데 무리가 없지만 미끄럼을 주의해야 한다.
울퉁불퉁 선 굵은 바위를 오르고 나면 임꺽정봉(449.5m) 표지석이 반긴다. 노송과 어울어진 조망 쉼터엔 쉬어가기 편한 솔향 번지는 나무의자에 앉아 짧은 휴식을 취하고 하산길은 굴곡이 심한 암릉길로 내려서 불곡산 기암 중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악어바위 암릉길로 들어선다. 이어서 만난 악어바위는 신기하리만큼 꼭 닮아 있다. 마치 바위를 기어오르는 형상이다.
악어바위를 보고 다시 20m가량 올라와 급경사 바위를 내려서 채석장을 지나 대교아파트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총 3시간30분의 산행. 겨울 골짜기 산행은 여전히 숨가쁘지만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움을 갖게 한다. 불곡산의 거대한 암릉과 기암, 작지만 단단하고 막힘없는 조망에 만족스러운 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