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주=역사평론가] 김정희는 정확한 숫자를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호를 사용했다. 그가 평생 사용했다는 호는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적게는 100여개에서부터 많게는 500여 개나 된다. 최근에는 김정희의 명호(名號)만을 조사하고 연구해 그 숫자가 정확하게(?) 343개라고 주장하는 책까지 나왔다.
어쨌든 김정희의 호가 몇 백 개에 달한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그는 호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희가 평생 수백여 개의 호를 썼지만 그를 대표하는 호를 든다면 단연 추사(秋史)와 완당(阮堂)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정희하면 ‘추사’를 가장 먼저, 그리고 ‘추사체(秋史體)’를 가장 쉽게 떠올릴 것이다.
반면 완당이라는 호는 좀 낯선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유홍준 교수는 김정희의 평전(評傳)을 출간할 때 그 책의 제목을 ‘추사평전’이 아닌 ‘완당평전’이라고 붙였다. 김정희의 삶과 학문의 궤적을 추적해보면 그를 대표하는 호는 추사가 아니라 완당이기 때문에 ‘완당평전’이 맞다는 얘기다.
심지어 김정희가 청나라의 수도 연경(북경)에 다녀온 이후부터는 “이제 김정희를 추사라고 부르는 것보다 완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의 행적에 더 어울린다. 실제로 김정희는 중년에 들어서면 추사라는 낙관은 거의 쓰지 않고 주로 완당이라고 했다.”(유홍준 저, 『완당평전1』, 학고재, 2002. P104)고까지 적었다.
그래서 필자는 ‘추사’와 ‘완당’이라는 호를 본격적으로 탐사해보면서 김정희를 대표할 호가 과연 추사인지 아니면 완당인지에 대해 가늠해보고자 한다. 먼저 ‘추사’에 관한 기록과 이야기부터 뒤져보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