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주=역사평론가] 당시 정여립이 대동계의 구성원들에게 강론한 급진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 하나가 “천하는 모든 사람의 소유물이므로 일정한 주인(임금)이 있을 수 없다”는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이다. 이에 대한 기록이 『선조수정실록』22년(1589년) 10월1일자 기사에 이렇게 실려 있다.
“사마광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유비가 세운 촉(蜀)나라가 아닌) 위(魏)나라를 정통으로 해 기년(紀年)을 삼았다. 이것이 바로 직필(直筆)이다. 그런데 주자(朱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했다. 대현(大賢)의 견해라는 게 각자 이렇게 다르다.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정해진 주인이 있겠는가.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왕(禹王)은 서로 임금 자리를 전했는데, 이들은 성인이 아닌가?”
여기에서 정여립은 비록 왕의 존재를 빌어서 누구나 임금이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이것은 앞서 허균의 사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듯이 단지 하나의 왕을 다른 왕으로 바꾸는 ‘반정(反正)’이나 혹은 하나의 왕조를 다른 왕조로 교체하는 ‘역성혁명(易姓革命)’보다 더 급진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천하는 누군가 사적(私的)으로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공적(公的)인 것, 즉 제왕이나 양반사대부의 소유물이 아닌 공민(公民 : 백성)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이 천하를 차지하는 것은 본래의 주인이 자신의 것을 찾는 것일 뿐 역모나 반역이 아니다.
정여립이 강론한 또 하나의 급진 사상 역시 『선조수정실록』22년(1589년) 10월1일자 기사에 나와 있다. 그것은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느냐?”는 이른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이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은 왕촉(王蠋)이 죽을 때 일시적으로 한 말이지 성현(聖賢)의 공통된 의견은 아니다. 유하혜(柳下惠)는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맹자(孟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과 양(梁)나라 혜왕(惠王)에게 왕도(王道)를 행하라고 권유하였다. 유하혜와 맹자는 성현이 아닌가.”
여기에서 정여립은 앞선 주장보다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언사로 조선이라는 왕조국가를 부정한다.
어쨌건 정여립이 대동계의 구성원들에게 강론한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과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은 모두 조선의 지배 체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그가 신분의 장벽과 질서를 허물고 파괴하는 형태와 방식으로 대동계를 조직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천하는 ‘왕과 양반사대부의 사적 소유물’이 아닌 ‘만백성의 공적 소유물’이라는 급진 사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정여립이 언제부터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조선 최대 역모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인지, 그의 글과 기록은 물론 그와 관련한 정보 또한 정확하게 전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조정에서 벼슬살이를 했을 때부터 정여립이 이러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정여립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죽도를 본거지로 삼고 ‘죽도(竹島)’라고 자호했던 시기를 전후해 자신의 사상을 세우고 그에 따라 대동계를 조직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여하튼 정여립은 허균보다 수 십 년이나 앞서 왕조체제의 전복을 꿈꾼 최초의 양반사대부 출신 혁명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