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인문학] 제13강 입교편(立敎篇)…가르침을 세워라⑦
[한정주=역사평론가] 忠子曰(충자왈) 治官(치관)엔 莫若平(막약평)이요 臨財(임재)엔 莫若廉(막약렴)이니라.
(충자가 말하였다. “관리가 다스릴 때에는 공평(公平)만한 것이 없고 재물을 대할 때에는 청렴(淸廉)만한 것이 없다.”)
사마천이 『사기』에 가혹함과 포악함으로 악명을 떨친 관리 열두 명을 기록한 『혹리열전(酷吏列傳)』을 남겼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마천은 이들 혹리와 정반대되는 관리, 즉 법령을 잘 지키고 도리를 좇아 자기 직무에 충실했던 순리(循吏)들에 관한 기록인 <순리열전(循吏列傳)> 또한 『사기』에 남겼다.
흥미로운 사실은 <혹리열전>이 열 두 명의 관리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순리열전>에는 고작 다섯 명의 관리가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는 세상에는 ‘순리’보다 ‘혹리’가 훨씬 많다는 암시이다.
더욱이 <혹리열전>에 나오는 열 두 명의 관리 중 열 명이 사마천이 살던 당대, 즉 무제(武帝) 때 인물이고 나머지 두 명 또한 한나라 때 사람인 반면 <순리열전>에 나오는 다섯 명의 관리는 모두 한나라보다 훨씬 이전 시대인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물론 춘추전국시대에는 ‘순리’만 있었고 한나라 시대에는 ‘혹리’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사마천은 이전 시대보다 자신의 시대에 관리들의 횡포와 부정부패가 훨씬 더 극심하다는 사실을-<혹리열전>과 <순리열전>을 대비하는 형식을 취해-우회적으로 고발하고 비판했다고 하겠다.
어쨌든 <순리열전>을 보면 사마천 역시 관리의 기본 도리이자 최고 덕목을 ‘공평함’과 ‘청렴함’에서 찾았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공평함’으로 이름을 얻은 관리로는 춘추시대 진(晋)나라 문공 때 옥관(獄官: 재판관)인 이리(李離)가 있었다. 어느 날 이리는 자신의 잘못된 판결로 사람이 목숨을 잃자 스스로 감옥에 자신을 가두고 처형을 기다렸다.
그런데 문공은 그 사건은 하급 관리에게 잘못이 있고 이리에게는 잘못이 없다면서 죄를 묻지 않고 풀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리는 자신의 잘못을 하급 관리에게 떠넘기고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옥관에게는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만약 판결을 잘못했다면 그에 대한 형벌은 마땅히 자신이 받아야 합니다. 지금 제가 사건의 전말을 잘못 들은 까닭에 사람을 죽였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결국 이리는 문공의 명령을 듣지 않고 스스로 칼에 엎드려 죽음을 맞았다. 법령과 형벌의 적용과 집행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이리가 이렇게까지 한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법령과 형벌의 생명은 ‘공평함’이고, 법령과 형벌을 집행하는 옥관(재판관)의 판결을 모든 사람들이 수긍하는 까닭 역시 ‘공평함’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만약 법령과 형벌이 ‘공평함’을 잃게 되면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물론이고 죄를 지은 사람들조차 그 법령과 형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사마천은 이리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리의 죽음으로 진나라 문공은 국법(國法)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청렴함’으로 이름을 얻은 관리로 어떤 사람을 소개하고 있는가. 바로 노나라 출신의 박사 공의휴(公儀休)이다.
공의휴는 뛰어난 학식과 지혜로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특히 공의휴는 나라에서 봉록을 받아먹고 사는 벼슬아치가 일반 백성과 재물의 이익을 다투지 못하도록 했고 많은 봉록을 받는 고관대작일수록 더욱 엄격하게 다루어서 아무리 작고 하찮은 재물이라도 받지 못하게 했다.
실제 그는 자신의 집에 심은 채소가 맛이 좋으면 모두 뽑아버리고 또한 자신의 집에서 짠 베가 품질이 좋으면 베틀을 불살라버렸다. 공의휴가 이렇게 한 까닭은 자신의 집안에서 좋은 채소를 재배하고 품질이 좋은 베를 생산하게 되면, 그것으로 생계를 삼아 살아가는 농부와 장인과 베 짜는 여인들이 할 일을 잃고 물건을 제대로 팔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일반 백성과 재물의 이익을 다투지 않는 것’, 그것은 공의휴가 생각한 관리의 첫 번째 ‘청령함’의 조건이었다.
공의휴가 재상이 된 후 생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빈객들이 그에게 생선을 보내왔다. 공의휴가 생선을 받지 않자 어떤 빈객이 생선을 좋아하면서 왜 받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공의휴는 자신이 생선을 너무나 좋아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생선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지위와 관직이 높아질수록 좋아하는 물건을 부당하게 취득하는 것을 멀리하지 않게 되면 바로 그 좋아하는 물건 때문에 재앙을 입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많은 봉록을 받고 지위가 높은 고관대작일수록 더욱 엄격하게 부당한 재물을 취득하지 않는 것, 그것은 공의휴가 생각한 관리의 두 번째 ‘청렴함’의 조건이었다.
진나라 이리의 ‘공평함’과 노나라 공의휴의 ‘청렴함’을 갖춘 관리가 나라와 백성을 다스린다면 그 나라와 백성은 잘 다스리려고 하지 않아도 잘 다스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