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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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06.2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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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3강 입교편(立敎篇)…가르침을 세워라⑥
▲ 왕촉이 목숨을 끊는 장면을 묘사한 『오륜행실도』 제2권 <王蠋絶脰(왕촉절두)>.

[명심보감 인문학] 제13강 입교편(立敎篇)…가르침을 세워라⑥

[한정주=역사평론가] 王蠾曰(왕촉왈) 忠臣(충신)은 不事二君(불사이군)하고 烈女(열녀)는 不更二夫(불경이부)니라.

(왕촉이 말하였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바꾸어 섬기지 않는다.”)

왕촉은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인데, 당시 어질고 현명한 인물로 크게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하고 있는 왕촉의 말은-앞서 소개한 적이 있는-연나라 소왕 시절 장군 악의가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는 바람에 제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온 것이다.

제나라를 공격해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던 악의는 왕촉이 연고를 두고 있는 획읍(畫邑) 주변 30리 안으로는 군사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제나라 백성들이 왕촉의 의로움과 절개를 존경해 따른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악의는 왕촉을 설득·회유해 연나라의 편에 서게 한다면 크게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악의는 왕촉에게 연나라의 신하가 되면 1만호의 식읍을 주고 장군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왕촉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악의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삼군(三軍)을 동원해 획읍 백성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왕촉은 악의의 위협과 협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 임금이 일찍이 간언(諫言)을 듣지 않아 비록 지금 내가 들판에서 발을 일구는 신세가 되었지만 멸망의 위기에 처한 나라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나의 상황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다시 그대의 위협과 협박에 굴복해 연나라의 벼슬아치가 된다면 폭군인 걸왕을 도와 포악하고 무도한 행동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의롭지 못하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가마솥에서 삶겨 죽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말을 마친 왕촉은 의연하게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자결했다.

나라의 멸망보다 자기 한 몸 살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니기 바빴던 제나라의 벼슬아치들은 왕촉의 죽음을 전해들은 후 “벼슬도 하지 않은 왕촉도 절개를 지켜 연나라를 섬기지 않은 의로움을 보였는데 나라의 녹(祿)을 먹는 우리가 이렇게 도망만 다녀서야 되겠느냐?”면서 크게 반성하며 뉘우쳤다고 한다.

이후 제나라 대부(大夫)들은 한 가지로 뜻을 모은 다음 거성(莒城)으로 가서 민왕의 아들을 찾아 새로이 양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제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연나라 군대에 맞서 힘껏 싸우기 시작했다.

왕촉이 목을 매 자결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바로 “忠臣(충신) 不事二君(불사이군) 烈女(열녀) 不更二夫(불경이부)”였다. 왕촉의 말은 그 후 임금을 섬기는 신하와 남편을 따르는 아내가 지켜야 할 기본 도리이자 실천 덕목으로 오랜 세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왕촉의 고사는 『사기』 <전단열전(田單列傳)>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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