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의 계획, 일 년의 계획, 하루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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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계획, 일 년의 계획, 하루의 계획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06.21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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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3강 입교편(立敎篇)…가르침을 세워라④

[명심보감 인문학] 제13강 입교편(立敎篇)…가르침을 세워라④

[한정주=역사평론가] 孔子(공자) 三計圖云(삼계도운) 一生之計(일생지계)는 在於幼(재어유)하고 一年之計(일년지계)는 在於春(재어춘)하고 一日之計(일일지계)는 在於寅(재어인)이니라 幼而不學(유이불학)이면 老無所知(노무소지)요 春若不耕(춘약불경)이면 秋無所望(추무소망)이요 寅若不起(인약불기)면 日無所辦(일무소판)이니라.

(공자의 ‘삼계도(三計圖)’에서 말하였다. “일생의 계획은 유년기에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인시(寅時: 새벽)에 있다. 어렸을 때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게 되고, 봄에 땅을 갈고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두어들일 것이 없게 되고, 인시(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없게 된다.”)

『안씨가훈』에서 안지추는 이렇게 말한다.

“아주 지혜로운 사람은 가르치지 않아도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성취한다. 반면 아주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봤자 나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평범한 보통의 사람은 가르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극소수이듯이 아주 어리석은 사람도 극소수이다. 우리들은 대개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다. 이러한 까닭에 안지추는 자식을 가르칠 때는 평범한 보통의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마땅히 가르쳐 알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가르치는 시기는 어느 때가 가장 적합할까. 敎兒嬰孩(교아영해). 말귀를 알아드는 나이, 곧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심지어 안지추는 태교(胎敎) 단계에서부터 가르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소학』에는 지혜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제갈공명이 자신의 아들에게 남긴 훈계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제갈공명이 역설하고 있는 자식 교육의 핵심 역시 ‘가르쳐야 할 때 가르치지 않고 배워야 할 때 배우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뉘우친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르기 때문에 어렸을 때 제대로 가르침을 받고 배우지 못하면 아무 뜻도 없고 아무 목표도 없이 그냥저냥 살다가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얘기이다.

안지추와 제갈공명 모두 나이가 들어 성취하는 것이 있으려면 반드시 어렸을 때부터 배움에 뜻을 세우고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배움의 시기는 어렸을 때일수록 좋다고 말한다. 심지어 안지추는 배움이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된다고 할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다면 배움에 있어 가장 해로운 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게으름’이다. 그럼 게으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율곡 이이는 스무 살 때 평생의 지침으로 삼으려고 지은 <자경문(自警文)>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아침나절에 할 일을 생각하고, 밥을 먹은 뒤에는 낮에 할 일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내일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하루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으면 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내게 된다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배움에 뜻을 두었다면 ‘숙흥야매(夙興夜寐)’, 즉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밝혀 놓은 대표적인 글이 앞서 소개한 적이 있는 송나라 때 사람 남당(南塘) 진백(陳伯)이 지은 <숙흥야매잠>이다. 이 글의 첫 구절은 “닭이 울어 잠에서 깨면 이런 저런 생각이 점차로 일어나니 그 사이에 어찌 마음을 고요히 하여 정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로 시작하고 있다.

율곡은 『성학집요』에서 ‘닭이 울어 잠에서 깨면 마음을 고요히 하여 정돈하고 마음을 모아서 솟아오르는 해처럼 밝게 하라는 것은 해가 돋기 전에 일찍 일어나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또한 율곡은 1578년 나이 43세 때 제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해주 석담에 지은 은병정사의 <학규(學規)와 약속(約束)>을 제정할 때도 이 점을 특히 강조했다.

“새벽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반드시 하루 동안 하는 일이 있어서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독서하거나 조용히 앉아서 본마음을 간직하거나 뜻과 이치를 강론하거나 배우고 익힌 것에 대해 질문하거나 좀 더 자세하게 가르쳐달라고 여쭈는 데 힘써야 한다. 여기에서 어긋남이 있다면 배우는 자라고 할 수 없다.”

공자나 율곡의 경우를 보더라도 배움에 있어서 가장 해로운 적인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벽 일찍 일어나 하루 동안 할 일을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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