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자(巧者)와 졸자(拙者)…교묘한 사람과 우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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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자(巧者)와 졸자(拙者)…교묘한 사람과 우둔한 사람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05.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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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2강 성심편(省心篇) 하(下)…마음을 살펴라㉓
▲ 공자가 자신의 제자들 가운데 나라와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임금의 재목감이라고 언급한 중궁(왼쪽)과 공자의 가르침에 하루 종일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던 안회.

[명심보감 인문학] 제12강 성심편(省心篇) 하(下)…마음을 살펴라㉓

[한정주=역사평론가] 濂溪先生曰(염계선생왈) 巧者言(교자언)하고 拙者墨(졸자묵)하며 巧子勞(교자로)하고 拙者逸(졸자일)하니라 巧者賊(교자적)하고 拙者德(졸자덕)하며 巧者凶(교자흉)하고 拙者吉(졸자길)하니라 嗚呼(오호)라 天下拙(천하졸)이면 刑政徹(형정철)하고 上安下順(상안하순)하며 風淸弊絶(풍청폐절)이니라.

(주염계 선생이 말하였다. “교묘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만 우둔한 사람은 말이 없다. 교묘한 사람은 수고롭지만 우둔한 사람은 편안하다. 교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만 우둔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덕을 베푼다. 교묘한 사람은 흉하지만 우둔한 사람은 길하다. 오호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우둔하다면 형벌과 정치가 두루 통해 밝아져서 윗사람은 편안하고 아랫사람은 순박하여 풍속이 맑아지고 폐단은 없어지게 된다.”)

옛 성현은 사람을 보거나 가르칠 때 ‘교자(巧者)’, 즉 교묘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졸자(拙者), 곧 우둔한 사람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교묘한 사람은 대개 스스로 말재주나 재주와 재능이 뛰어나다고 여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말재주로 기교를 부리거나 재주와 재능을 꾸미기 좋아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을 능사로 삼기 쉽다.

반면 우둔한 사람은 말재주도 없고 재주와 재능도 없어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묘하게 말을 꾸미는 재주가 없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이다.

이러한 까닭에 『채근담』에서는 “문장은 졸렬(拙劣)해야 진보하고, 도리 역시 졸렬(拙劣)해야 이루어진다. ‘졸(拙)’, 한 글자에 무한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문장과 도리를 수련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기교를 부르거나 교묘한 재주에 매달려서는 안 되고 오히려 순수하고 질박하고 성실해야 비로소 진보하고 성취하게 된다는 뜻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졸자(拙者)’를 ‘눌자(訥者)’로 바꾸어 ‘교자(巧者)’와 ‘눌자(訥者)’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때 ‘교자(巧者)’가 말재주가 뛰어나 교묘하게 잘 꾸미는 사람이라면 ‘눌자(訥者)’는 어눌해 말이 없지만 오히려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가리킨다.

먼저 공자는 『논어』 <학이(學而)> 편에서 “巧言令色(교언영색)이 鮮矣仁(선의인)이니라”라고 했다. “교묘하게 말을 꾸미고 낯빛을 좋게 하는 사람치고 어진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다.

반면 『논어』 <자로(子路)> 편에서는 “剛毅木訥(강의목눌)이 近仁(근인)이니라”라고 했다. “강직하고 굳세며 질박하고 어눌한 사람은 어진 사람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렇듯 공자는 영특하고 말재주가 뛰어난 제자보다는 꾸밈이 없고 질박하며 말수가 적어 오히려 어눌하거나 어리석어 보이는 제자들을 더 아끼고 좋아했다.

예를 들어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하루 종일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던 안회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렇게 칭찬했다.

“내가 안회와 함께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마디 말도 거스르지 않아 매우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물러간 뒤에 그의 언행을 살펴보았더니 내가 한 말을 만족스럽게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안회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처음 공자는 아무런 말도 없는 안회가 자신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지 행동이 말을 따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고 부끄럽게 여겨서 말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 것이지 어리석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회의 일상생활을 보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제자 중궁(仲弓)에 대해 인물평을 하면서 “중궁은 어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말재주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공자는 도리어 중궁의 ‘어눌함’을 높여 칭찬했다.

“말재주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교묘하게 말재주만 부린다면 오히려 자주 미움만 사게 될 뿐이다. 나는 중궁이 어진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대하면서 어찌 교묘하게 말재주만 부리겠는가.”

중궁은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신분이 미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사람들로부터 말재주가 없다는 혹평을 받은 중궁을 가리켜 “중궁은 마땅히 임금의 자리에 앉아 백성을 다스릴 만한 재목이다”라고까지 극찬했다.

공자가 자신을 따르는 수천 명의 제자들 가운데 나라와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임금의 재목감이라고 언급한 제자는 중궁이 유일무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공자는 뛰어난 재주와 재능으로 교묘하게 자신을 꾸미는 사람보다는 어눌하고 어리석어도 진솔하고 성실한 사람을 높게 평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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