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해(汝諧)·충무공(忠武公)은 아는데 이순신 장군의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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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汝諧)·충무공(忠武公)은 아는데 이순신 장군의 호는?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4.09.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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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⑮

▲ 덕암(德巖) 이순신의 영정
[한정주=역사평론가] 영화 ‘명량’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을 일컬어 흔히 여해(汝諧) 혹은 충무공(忠武公)으로 부른다.

여기서 여해(汝諧)를 일반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호(號)로 알고 있지만, 이는 자(字)다. 또 충무공(忠武公)은 시호(諡號)로 정작 그의 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충무공이 태어난 지 442년째가 됐던 1987년 4월28일자 경향신문에서 유인석 기자는 ‘충무공에게도 아호(雅號) 있었다’는 제목으로 이순신의 호가 ‘덕암(德巖)’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기사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이순신 장군도 ‘덕암(德巖)’이란 아호를 사용했음이 한 고문서(古文書) 기록에서 밝혀졌다.

28일로 제442회 탄일을 맞은 충무공(忠武公)의 아호(雅號)는 ‘서원겸사기(書院兼史記)’란 필서본(筆書本)(성암고서박물관(誠菴古書博物館) 연구원 김연창(金然昌)씨 소장)에 게재되어 있는데 김씨가 이날 처음 공개했다.

이순신 장군의 아호 ‘덕암(德巖)’은 이 책의 ‘임진왜란록(壬辰倭亂錄)’ 절의공신(節義功臣)편에 중봉(重峯) 조헌, 천곡(泉谷) 송상현, 제봉(霽峯) 고경명 등과 함께 덕암(德巖) 이순신으로 쓰여 있다.

교과서, 백과사전, 조선왕조실록 등 모든 충무공 기록에는 지금까지 자(字) 여해(汝諧)나 시호(諡號) 충무공(忠武公)만을 기록해 왔을 뿐 아호(雅號) 덕암(德巖)은 누락돼왔으며 또 학자들도 이충무공(李忠武公)의 아호는 없었던 것으로 믿어왔었다.

서지연구가 김씨는 ‘조선조(朝鮮朝) 전란, 임진록(壬辰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 정사(正史)만을 더듬어온 지금까지의 이순신장군의 연구도 좋았지만 앞으로 더 자세한 것은 야사(野史) 연구로 보완돼야 할 것’이라며 ‘엄연히 아호가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된 이상 그동안 잘못 전해진 기록들을 지금부터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 박성수 교수(한국사)는 ‘흥미 있는 자료 발굴’이라며 ‘충무공(忠武公)이란 시호에 밀려 아호(雅號) 쯤은 묻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림대 최영희 교수(한국사)는 의견이 달랐다. ‘무인(武人)이었던 충무공에게는 아호(雅號)가 없었다’며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회의론을 폈다.”

▲ 영화 ‘명량’ 포스터
이외에도 『소설 임진왜란』을 쓴 김성한씨는 이순신 장군에게는 덕곡(德谷)이라는 호가 있다고 했다.

필자가 보건대 ‘덕곡(德谷)’과 ‘덕암(德巖)’이 어느 곳인지는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 두 호는 그 유사성으로 미루어보아 동일한 지명(地名)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덧붙이자면 ‘여해(汝諧)’라는 이순신의 자(字)는 그의 어머니가 『서경(書經)』에 나오는 순(舜)임금의 “오직 너(汝)라야 세상이 화평케(諧) 되리라”는 말에서 뜻을 취해 지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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