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방법으로 본 아Q의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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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방법으로 본 아Q의 정신승리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8.0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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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⑥ 루쉰 『아Q정전』…모든 乙들의 절망 ‘정신승리’Ⅱ
중국에서 출간된 『阿큐정전』에 실린 아큐 삽화.
중국에서 출간된 『阿큐정전』에 실린 아큐 삽화.

[한정주=고전연구가] 현실의 굴욕과 패배를 환희와 승리로 둔갑시키는 아Q의 ‘정신승리’는 크게 다섯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① 자신에게 압박을 가하는 상대보다 자신이 훨씬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승리법’

“하지만 동네 건달들은 그 정도에서 그칠 인간들이 아니어서 아Q를 놀리다가 결국 때리기까지 했다. 아Q는 형식적으로는 졌다. 동네 건달들은 아Q의 누런 변발을 틀어쥐고는 벽에다 네다섯 번 소리가 날 정도로 찧고 나서야 아주 만족스럽게 승리한 기분을 느꼈다.

아Q는 잠시 서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들놈에게 맞은 셈이네. 요즘 세상은 정말 개판이라니까 …….’ 그리고 나서 그도 아주 만족스럽게 승리한 기분이 되어 돌아갔다.

아Q는 전에는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것을 나중에는 죄다 입 밖으로 내버리곤 했다. 그래서 아Q를 놀리는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정신적인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아Q정전』 ‘제2장 승리의 기록’, 문학동네, 2011, p22)

② 첫 번째 방법과는 반대로 굴욕을 주고 폭력을 가하는 상대보다 자신을 낮은 위치에 두는, 다시 말해 스스로 상대보다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경멸하며 업신여기는 ‘정신승리법’

“(동네 건달들은) 그의 변발을 잡아당길 때면 미리 아Q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Q, 이건 자식이 아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봐,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

아Q는 두 손으로 자기 머리채를 틀어쥐고 고개를 비틀며 소리쳤다. ‘버러지를 때리고 있는 거라고 하면 어때? 난 버러지야! 이래도 놔주지 않을 거야?’ 버러지라고 해도 동네 건달들은 놔주지 않았고 가까운 담벼락에다 머리를 대여섯 번 짓찧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승리했다는 듯이 떠났다. 이번에야말로 아Q를 제대로 혼내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십 초도 못 되어 아Q 역시 만족해하며 떠났다.

그는 스스로를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데에는 자기가 첫째가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더구나 ‘스스로를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데에는’이라는 말을 제외하면 ‘첫째가는 사람’이라는 말만 남으니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도 첫째가는 사람이 아닌가? ‘네깟 것들이 무엇이라고 감히?’

아Q는 이런 갖가지 기묘한 방법으로 적들에게 이긴 뒤 즐겁게 술집으로 가서 술을 몇 잔 마시고 사람들과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말다툼에서 승리를 하고서 즐겁게 사당으로 돌아가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잠을 잤다.”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아Q정전』 ‘제2장 승리의 기록’, 문학동네, 2011, p23〜24)

③ 상대에게 굴욕을 당해도 자신의 고통과 패배를 기억하지 않고 즉시 망각해버려 패배자의 기분을 전혀 느끼지 않는 ‘정신승리법’

“멀리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그의 적수가 또 오는 것이다. 그 역시 아Q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으로 첸 대감네 큰아들이었다. …… 그런 ‘가짜 양놈’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중대가리…… 당나귀 같은……’ 아Q는 아직껏 속으로만 욕을 했을 뿐 입 밖으로 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의분이 치솟고 복수심이 일어 자기도 모르게 말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중대가리가 노란 칠을 한 지팡이-아Q가 장례 때 짚는 곡상봉(哭喪棒)이라고 부른 막대-를 짚고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Q는 그 순간 한 대 맞겠구나 싶어 얼른 온몸을 움츠리고 어깨를 잔뜩 추켜올린 채 기다렸다. 이윽고 타닥 하는 소리가 울렸으니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저 아이에게 말한 겁니다요!’ 아Q는 곁에 있던 아이를 가리키며 변명을 했다. 탁! 타닥! 아Q의 기억으로는 이것이 평생 두 번째 당하는 굴욕인 듯 싶었다.

다행히도 타닥 소리가 나면서 맞고 나자, 그것으로 끝난 것 같아 마음이 오히려 가뿐해지고 ‘망각’이라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보배도 효과를 발휘해서, 천천히 걸어 술집 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분도 어지간히 좋아졌다.”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아Q정전』 ‘제3장 승리의 기록 속편’, 문학동네, 2011, p34〜36)

④ 자신이 당한 현실의 고통과 패배를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전가시켜서 자신을 승리자로 둔갑시키는 ‘정신승리법’

“그때 맞은편에서 정수암의 젊은 비구니가 걸어왔다. 아Q는 보통 때도 비구니를 보기만 하면 욕을 하던 터라 지금처럼 굴욕을 당한 뒤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기억이 되살아나자 적개심이 솟구쳤다. ‘오늘 왜 이렇게 재수가 없나 했더니 너를 만나려고 그랬구나!’ 그는 앞으로 다가가 큰소리로 침을 뱉었다. ‘칵, 퉤!’ 젊은 비구니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그저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아Q가 비구니 옆으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비구니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쓰다듬고 헤헤거리며 말했다. ‘이 까까머리야! 얼른 절로 돌아가, 중이 널 기다리고 있어.’ ‘너 왜 집적거리는 거냐……’ 비구니는 얼굴이 온통 붉어진 채 대꾸를 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아Q는 자기가 한 건 올렸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해주자 더욱 기쁘고 신이 났다. ‘중은 집적거려도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야?’

이번에는 비구니의 볼을 꼬집었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아Q는 더욱더 기가 살아 자기 행동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힘껏 꼬집고 나서야 놓아주었다.

그는 이 일전을 치르느라 왕 털보는 벌써 잊어버렸고, 가짜 양놈도 잊었으며, 오늘 당한 재수 없는 일에 모조리 복수를 한 것 같았다. 더구나 이상하게도 타닥 하는 소리가 났던 때보다 몸이 더욱 가뿐하고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아Q정전』 ‘제3장 승리의 기록 속편’, 문학동네, 2011, p36〜40)

⑤ 권력을 가진 사람 혹은 집단과 동일시하는 조작을 통해 자신을 승리자로 전환시키는 ‘정신승리법’

“‘혁명도 좋은 것이구나.’ 아Q는 생각했다. ‘그 빌어먹을 것들을 혁명해버리자. 그 나쁜 것들! 가증스러운 것들! …… 그래. 나도 혁명당에 가담해야지.’

아Q는 요즘 들어 돈이 궁해서 좀 불만스러웠다. 게다가 빈속에 낮술을 두어 잔 마셨더니 더 빨리 취하는 것 같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자니 붕 뜬 기분이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돌연 자신이 바로 혁명당인 듯했고 웨이좡 사람들이 죄다 자신의 포로인 듯했다.

그는 우쭐한 나머지 절로 큰 소리로 외쳤다. ‘반란이다! 반란!’ 웨이좡 사람들이 다들 두려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가련한 눈길은 예전에 본 적이 없었고 한번 보고 나자 오뉴월에 얼음물을 마신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그는 더욱 기쁨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좋구나. 좋아 …… 원하는 것은 모두 다 내 것이고, 마음에 드는 여자도 모두 내 차지다.’”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아Q정전』 ‘제7장 혁명’, 문학동네, 2011, p80〜81)

루쉰은 온몸에 열정을 품고 암흑을 보았다. 그리고 절망했다. 암흑과 절망뿐인 세상에서는 그것만이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암흑과 절망이 진실인 세상에서 희망을 말하는 것은 곧 거짓을 얘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암흑과 절망’뿐인 세상에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루쉰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그런 루쉰에게 아Q로 상징되는 당시 중국인의 ‘정신승리’는 암흑과 절망을 망각하거나 외면하기 위한 ‘거짓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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