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정의와 각자의 불의…“누구의 혹은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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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정의와 각자의 불의…“누구의 혹은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7.18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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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⑤ 아이스퀼로스 『오레스테이아』…이것이 정말 정의인가?Ⅳ
아가멤논을 살해하려는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아가멤논을 살해하려는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한정주=고전연구가] ④ 엘렉트라의 정의 : 아가멤논과 클뤼타이메스트라 사이에는 아들 오레스테스 외에 세 명의 딸이 있었다.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크리소테미스가 그들입니다.

아가멤논이 살해당한 후 엘렉트라는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혐오하고 증오하면서 오직 아버지의 복수만 소망하며 살아간다. 엘렉트라에게 ‘정의’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하는 것, 오직 그것만이 ‘정의’였다.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동생 오레스테스와 조우한 엘렉트라는 “아폴론 신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는 신탁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정의가 실현될 때가 다가왔다’면서 한없이 기뻐하며 제우스 신에게 이렇게 기도한다.

“위대하신 제우신 신이시여, 주먹을 힘껏 휘둘러 그 자들의 머리통을 내리치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 신뢰를 회복해주소서. 이는 불의 대신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오니, 대지여, 지하의 위대한 힘들이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숲, 2008, p117.)

⑤ 오레스테스의 정의 : 아르고스로 돌아와 아버지 아가멤논의 무덤가에서 누이 엘렉트라를 만난 오레스테스는 제우스 신에게 “비록 나를 낳아준 어머니이긴 하지만 사악하고 뻔뻔스런 그 여인에게 복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또한 신들을 향해 “아버지를 욕되게 한 자(아이기스토스)를 죽일 수만 있다면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선언한다. 오레스테스에게 정의란 아버지를 죽인 원수들에게 복수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마침내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기 위해 아르고스 궁전으로 향하는 바로 그 순간 오레스테스는 만천하에 이렇게 선포한다.

“그자들의 힘과 내 힘이, 그자들의 정의와 내 정의가 맞서리라.”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숲, 2008, p121.)

클뤼타이메스트라, 아가멤논, 아이기스토스, 엘렉트라, 오레스테스 가운데 누가 정의로운 사람이고 누가 불의한 사람인가.

그리스 원정군을 위해 자신의 딸을 희생시킨 아가멤논의 행위는 그리스 원정군의 입장에서 보면 ‘정의’지만 자신의 딸을 잃은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의 입장에서는 ‘불의’가 아닐까.

자신의 딸을 죽인 원수 아가멤논을 죽인 클뤼타이메스트라의 행위는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정의’이지만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불의’가 아닐까.

『오레스테이아』에서 가장 불의한 인간으로 등장하는 아이기스토스는 어떤가. 아이기스토스의 행위는 아가멤논과 엘렉트라, 오레스테스의 입장에서는 ‘불의’이지만 아이기스토스의 아버지와 형제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보다 더 ‘정의로운’ 행위가 없지 않은가.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의 행위는 클뤼타이메스트라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불의한 짓이 없을 만큼 불의한 짓이 아닐까. 하지만 아가멤논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정의로운 행위가 없을 만큼 정의로운 행위가 아닐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절대적·보편적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 이치로 절대적·보편적 불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의 정의인가? 또한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라고 말이다.

절대적인 정의도 혹은 절대적인 불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정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정의’ 또는 ‘누구를 위한 정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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