適會詩罇又此亭 알맞은 때 시와 술 다시 이 정자인데
欲花靑樹意冥冥 꽃 피려는 푸른 나무 그 뜻 아득하네
同隣罕見交如水 더불어 사는 이웃 가끔 보니 물처럼 사귀고
它客新逢聚似星 낯선 손님 새로 만나니 별처럼 모였네
古砌貞松根四據 옛 섬돌 곧은 소나무 사방으로 뿌리 뻗고
虛庭素鶴影雙停 텅 빈 뜰 흰 학 두 그림자 멈췄네
好拈燈畔弇州韻 등잔 앞 왕세정의 시 운(韻) 자 뽑아
句欲圓來二鼓聽 시구 막 이루려고 하자 이경을 알리네. (재번역)
『아정유고 1』
가을밤
賓鴻沙際下 모래톱 기러기 떼 내려앉은 순간
幽抱此時深 그윽한 내 마음 더욱 그윽하네
樓上一聲笛 누각 위 한 가닥 피리 소리
月中數處砧 달빛 속 여기저기 다듬이소리
初秋身欲健 초가을 신체 강건해지려 하는데
涼夜睡難侵 서늘한 밤기운 잠 들기 어렵네
空歎歲華晩 부질없구나! 이 해도 저무는데
風光只助吟 풍경 오롯이 시심(詩心) 북돋네. (재번역)
『영처시고 1』
[한정주=고전연구가] 가슴속에 가득 말이 쌓여 있고 머릿속에 잔뜩 글이 고여 있다고 해도 막상 문자와 언어로 표현하려고 하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말과 글이란 문자와 언어에 구속당할 수밖에 없다. 문자와 언어의 장벽과 한계에 제약당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말과 글이다.
이러한 까닭에 시를 짓는다는 것은 어렵고 괴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왜 시 짓는 어려움에 괴로워하면서도 시를 짓는 것일까? 짓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짓지 않을 수 없는가? 세상의 모든 존재, 하늘·바람·구름·천둥·비·해·달·별·노을·들녘·강·산·바다·봄·여름·가을·겨울·눈·제비·기러기·섬·배·매미·그림자·밤·귀뚜라미·등불·새벽·소나무·까마귀·봉우리·황혼·무지개·벗·술·모래톱·다듬이소리 등이 시를 지어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또한 가슴과 마음속의 모든 감성·뜻·기운·생각 등이 시를 지어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전자가 시인 밖의 시적 모티브라면 후자는 시인 안의 시적 모티브다. 안팎의 모든 것이 시를 지어달라고 아우성치는데 어찌 시를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