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당한 탕평 세상과 다가오는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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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당한 탕평 세상과 다가오는 비극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4.12.0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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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읽기>② 영조의 양위(讓位) 소동과 탕평정치(蕩平政治)
▲ 사도세자(왼쪽)와 영조.
◇ 글 싣는 순서
① 노론 당적의 왕세제(王世弟) ‘연잉군’
② “이복 형(경종)을 독살했다”는 비난 속에 왕위 오르다
③ 그치지 않은 경종 독살 비난…이인좌의 난과 탕평정국   
④ 당쟁을 막으려 양위 선언 하다…“나를 임금으로 대우하지 않는데 무엇 하겠는가?”
⑤ 좌절당한 탕평 세상과 다가오는 비극

[한정주=역사평론가] 영조의 ‘양위 소동’은 탕평정국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노론 당적의 임금이었지만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화합을 끝없이 모색하고 실험했던 ‘탕평 군주’의 현명함을 갖추고 있었다.

영조는 두 번째 ‘양위 소동’을 일으킨 다음해(1741년) 9월 이른바 ‘신유대훈(辛酉大訓)’을 발표해 그동안 자신을 지독히도 괴롭혀 온 경종 시절 왕세제 책봉과 대리청정 그리고 임인옥사와 관련한 모든 혐의를 스스로 벗어 버렸다.

‘신유대훈’을 통해 영조는 경종이 자신을 왕세제로 책봉한 것은 노론 대신들의 협박에 따른 역모가 아니라 경종과 대비의 하교에 의한 것임을 밝혔다.

또한 자신이 역적의 수괴로 기록되어 있는 임인옥사의 사건 보고서인 ‘임인옥안’을 불살라 버렸고 당시 역모 죄를 쓰고 피해를 입은 노론계 신하들을 모두 신원했다.

특히 이것은 당시 피해자였던 노론뿐만 아니라 당시 가해자였던 소론의 손까지 빌어 이룬 조치였기 때문에 영조는 이제 자신이 당파를 초월한 지존(至尊)으로 당당하게 서게 되었다는 자신감에 흠뻑 빠졌다.

그런데 정작 불행하게도 영조는 이때부터 자신의 태생적 한계, 즉 노론 당적의 임금임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 『영조실록』. 본래 명칭은 『영종지행순덕영모의열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태기영요명순철건건곤녕익문선무희경현효대왕실록』, 약칭 『영종대왕실록』이었다. 그러나 고종 26년(1889년) 묘호(廟號)를 영조(英祖)로 추존 개정한 후 『영조실록』으로 부르게 됐다.

1755년(영조 31년) 5월 나주 벽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비록 탕평 정국은 유지되었지만 신유대훈이 발표되고 난 이후부터 정국을 이끈 세력은 소론계 탕평파가 아닌 노론계 탕평파였다.

예를 들어보자. 1727년(영조 3년) 8월 영조는 첫 아들인 효장세자의 빈(嬪)으로 소론 탕평파인 조문명의 딸을 간택했다. 반면 1744년(영조 20년) 1월 영조는 사도세자의 빈(嬪)으로 노론계 명문가인 홍봉한의 딸을 맞아들였다.

세자빈의 간택은 곧 자신이 왕위를 물려줄 세자의 국정 파트너로 어떤 세력을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영조 3년과 영조 20년 사이의 이러한 변화는 당시 영조가 현재는 물론 미래의 국정 파트너로 누구를 중요시했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주 벽서 사건을 부른 주요한 원인 역시 신유대훈 이후 점차 노론에게 기울어 소론을 배척한 영조의 정국 운영에 있었다. 소론을 적극적으로 중용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반대세력이 일으킨 ‘이인좌의 난’을 어렵지 않게 평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영조는 망각해가고 있었다.

이인좌의 난 때처럼 영조가 나주 벽서 사건 이후 소론을 적극 끌어안는 탕평책으로 정국 운영을 했다면 더 큰 비극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조는 나주 벽서 사건 이후 오히려 더욱 노골적으로 노론의 당인(黨人)임을 밝히기 시작했다.

영조가 스스로 노론의 당색(黨色)을 드러낼수록, 또 조정이 노론 일색(一色)이 되어갈수록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조선사 최대의 비극은 점점 더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노론의 임금이기를 자처한 아버지(영조)와 노론의 임금이기를 거부한 아들(사도세자) 사이의 갈등과 충돌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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