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닫고 혀를 감추면 몸이 어디에 있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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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닫고 혀를 감추면 몸이 어디에 있든 편안하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10.30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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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8강 언어편(言語篇)…말을 조심하라⑤
당나라 말기 때부터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까지 무려 다섯 왕조에 11명의 황제를 섬기며 30여년 동안이나 고위관직에 있었고 20년이 넘게 재상의 자리를 지켰던 처세의 달인 풍도(馮道).
당나라 말기 때부터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까지 무려 다섯 왕조에 11명의 황제를 섬기며 30여년 동안이나 고위관직에 있었고 20년이 넘게 재상의 자리를 지켰던 처세의 달인 풍도(馮道).

[한정주=역사평론가] 口是傷人斧(구시상인부)요 言是割舌刀(언시할설도)니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이면 安身處處牢(안신처처뢰)니라.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요,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숙이 감추어두면 몸이 어느 곳에 있다고 해도 편안할 것이다.)

이 구절은 풍도(馮道)의 ‘설시(舌詩)’를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원작과 그 내용이 약간 다르게 되어 있다. 원래 풍도의 ‘설시(舌詩)’는 이렇다.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입은 바로 재앙의 문이고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혀는 바로 몸을 베는 칼이네.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입을 닫고 혀를 깊숙이 감추면
安身處處牢(안신처처뢰) 몸이 어느 곳에 있다고 해도 편안할 것이네

3행과 4행은 『명심보감』과 그 내용이 동일하지만 1행과 2행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풍도의 ‘설시’에서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고, 또한 입은 도끼의 모양에 가깝기보다는 문의 모양에 가깝기 때문에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풍도의 ‘설시’를 잘못 인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어쨌든 ‘설시’의 작자인 풍도는 중국사에서 가장 극심한 분열과 혼란의 시기였던 당나라 말기 때부터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까지 무려 다섯 왕조에 11명의 황제를 섬기며 30여년 동안이나 고위관직에 있었고 20년이 넘게 재상의 자리를 지켰던 처세의 달인이었다.

‘설시’에 담긴 뜻을 볼 때 그가 숱한 왕조가 명멸(明滅)한 혼란의 시대에 오랜 세월 권력의 정상에 있으면서 권세와 부귀를 잃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한 말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를 두려워해 말을 삼가고 조심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입을 닫고 혀를 깊숙이 감추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말을 삼가고 조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을 부르게 되는데, 그 재앙이란 것이 많은 말이 아니라 한 마디 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 때 사마천의 외손인 양운(楊惲)은 ‘앙천부부(仰天附缶: 하늘을 바라보고 질 장군을 두드린다는 뜻)’라는 시 한 편 때문에 허리가 잘려 죽임을 당했다.

또한 한나라 때 서순은 상관인 장창에게 ‘오일경조(五日京兆: 닷새 동안 밖에 벼슬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라는 뜻)’라고 했던 한 마디 말 때문에 시체가 저잣거리에 내걸리는 형벌을 받았다.

이러한 까닭에 비록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앞을 헤아리고 뒤를 살펴보아서 반드시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 혹시 등 뒤에서 할 말이라고 해도 또한 얼굴을 마주 보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이제 막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말이 정말 하지 않아야 할 말이라면 마땅히 입을 다물어야 한다.

자신을 망치는 재앙이란 대부분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한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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