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욕망’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력 담은 우화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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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욕망’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력 담은 우화 ‘호접몽’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3.07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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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②김만중 『구운몽』…현실의 삶과 가상의 삶Ⅰ

[한정주=고전연구가] 프로이트는 ‘꿈의 세계는 욕망의 세계’라고 말한다. 가상의 꿈은 현실의 욕망을 보여주고 현실의 욕망은 가상의 꿈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꿈속에서 욕망하고 욕망 속에서 꿈을 꾼다.

그런데 장자는 프로이트보다 2000년 전에 이미 ‘꿈의 세계가 욕망의 세계’라는 사실을 간파한 철학자였다. ‘꿈과 욕망’에 관한 장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담고 있는 흥미로운 우화(寓話)가 다름 아닌 ‘호접몽(胡蝶夢)’ 이야기다.

“예전에 장주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흡족한 기분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장주는 매우 즐거웠고 제 맘대로 날아다녔기 때문에 자신이 장주인 줄을 몰랐다. 그러다 갑자기 깨어보니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장주였다. 그는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분명히 구분이 있을 것이다. 이를 물화(物化 : 사물의 변화)라고 한다.” 『장자』 「제물론(齊物論)」

장자의 욕망은 무엇인가. ‘자유로운 삶’이다. 자유로운 삶을 욕망하지 않았다면 장자는 결코 ‘나비의 꿈’을 꾸지 않았을 것이다. 나비의 꿈은 장자의 욕망을 보여주고 장자의 욕망은 꿈 속 나비로 드러난다. 자유로운 삶을 욕망하기 때문에 장자는 ‘나비의 꿈’을 꾼 것이다. 그래서 장자의 욕망은 나비의 꿈이고, 나비의 꿈은 장자의 욕망이다.

만약 장자가 ‘자유로운 삶’을 욕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비의 꿈을 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장자는 그냥 장자일 뿐이고 나비 역시 그냥 나비일 뿐이다.

이때 장자의 세계와 나비의 세계는 분명한 구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장자가 ‘자유로운 삶’을 욕망하는 순간 현실의 장자는 꿈속 나비로 변하고 꿈속 나비는 현실의 장자가 변한다.

이 순간 장자의 현실 세계와 나비의 꿈 속 세계의 구분은 사라진다. 욕망의 세계에서는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순간 현실은 가상으로 변하고 가상은 현실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사물이 변화하는 이치’다.

이 지점에서 생각해보겠다. 현실은 존재하는 것이고 가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다. 현실 세계에도 가상 세계가 존재하며 가상 세계에도 현실 세계가 존재한다.

조선 시대 양반과 노비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노비에게 양반의 삶은 현실일까, 가상일까. 노비에게 양반의 삶은 존재하는 세계일까, 존재하지 않는 세계일까. 노비에게 양반의 삶은 보이는 세계일까, 보이지 않는 세계일까.

노비에게 양반의 삶은 현실의 삶이면서 동시에 가상의 삶이다. 노비에게 양반의 삶은 존재하는 세계이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노비에게 양반의 세계는 보이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세계다. 노비가 제아무리 양반의 삶을 살려고 발버둥 쳐도 그것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가상의 삶일 뿐이다.

노비에게 양반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이지만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도무지 붙잡을 수 없는 무지개 같은 세계 즉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또한 노비에게 양반의 세계는 아무리 보려고 애를 써도 결코 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든 노비에게 하루 일곱 끼를 먹는 양반의 삶과 세계는 현실이지만 가상의 삶이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며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일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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