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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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오래된 미래’
  • 이성태 기자
  • 승인 2014.07.15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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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를 살고 있던 아마존 원시부족에 대한 기록
▲ 습격을 떠나기 직전 야노마뫼족 전사들이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생각의힘 제공>

야노마뫼 족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국경 양편의 아마존에서도 외부인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살고 있었다. 1964년 섀그넌이 현지 조사를 시작했을 때까지도 양국 정부는 이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이들은 2만 명이 조금 넘었고 250개의 독립된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들은 외부 세계와 거의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유입된 질병으로 떼죽음을 당한 적도 없었다.

야노마뫼 족은 화전(火田)을 통해 플랜틴 바나나 등을 경작하고 있었다. 화전은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취문화에서 벗어나 농업과 가축에 완전히 의존하는 단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들이 석기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테크놀로지라고는 활과 화살, 불을 지피는 데 사용하는 막대기, 해먹, 질그릇, 줄기로 만든 바구니 등이 전부였다. 칼과 같은 일부 철제 도구가 있었지만 이것은 주로 막 접촉을 시작하고 있던 극소수의 선교사들로부터 얻은 것들이었다.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도 소개됐던 야노마뫼 족은 지구상에 남아 있던 마지막 야생의 원시 부족이었다.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처럼 섀그넌도 1년 정도의 현지 조사를 목표로 야노마뫼 지역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야노마뫼 족이 인류학계에서 통념적으로 이해되던 원시 부족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사회적 행동과 습성을 배우고 인구 변화와 이주 과정,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 이웃 마을과의 전쟁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그는 35년 동안 25번 남짓 야노마뫼 족의 품에 돌아갔고 대략 5년 정도를 그들과 함께 살았다.

루소는 『사회계약론』(1762)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은 더없이 행복하고 비폭력적이며 이타적이고 경쟁하지 않고 서로에게 친절하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섀그넌은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상상이 몽상임을 보여준다.

섀그넌이 관찰한 야노마뫼 족은 만성적인 폭력과 전쟁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야노마뫼 족의 땅에 들어갔던 첫날에도 이웃 마을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야노마뫼 족은 이웃 마을에서 초대를 할 때에도 이것이 진정한 초대인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한 음모인지를 항상 고민해야 했다. 오히려 우리의 먼 조상들은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1651)에서 묘사했던 자연 상태, 즉 만성적인 전쟁 상황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과학의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전쟁이란 부족한 전략적 물적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벌어지는 집단 간의 다툼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인류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시대, 즉 기껏해야 지난 8000년 동안에나 적용될 수 있다.

오히려 인류의 기나긴 역사에서 집단 간의 갈등이 발생한 주된 목적은 생식가능 연령대의 여성을 추가로 획득하는 것이었다.

섀그넌은 1988년 야노마뫼 족의 전쟁을 연구한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현재 생존 중인 야노마뫼 족의 전사(우노카이), 즉 누군가를 죽인 경험이 있는 137명을 조사한 논문이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40세 이상의 생존자 중 3분의 2가 한 명 이상의 가까운 친족-아버지와 형제, 남편과 아들-을 폭력으로 잃었다. 그리고 생존한 성인 남성의 45%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을 죽인 경험이 있었다.

흥미로운 결과는 야노마뫼 족 남성들과 부인의 수 및 번식률과의 관계다.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이 전사들은 평균적으로 1.63명의 부인을 가졌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부인의 수는 0.63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는 20세 이후 네 구간으로 분류한 모든 연령대의 성인 남성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더 많은 부인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자식도 더 많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평균 4.91명의 자식을 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자식 수는 평균 1.59명에 불과했다.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무려 3배나 많은 자식을 낳은 것이다.

이처럼 ‘전략적 물적 자원’이 갖춰지기 이전의 부족사회는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접근권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섀그넌의 중요한 정보 제공자 중 한 명은 한 마을이 적대적인 여러 마을로 분열될 때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이 반복되자 버럭 화를 내며 “이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그만해요! 여자! 여자! 여자 때문이었소!”라고 소리쳤다.

신간 『고결한 야만인』(생각의힘)은 섀그넌이 경험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원시 부족에 대한 기록이다.

현대의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단면을 보여준다.

특히 한 인류학자가 인간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부딪혔던 지적 야만인들로부터의 비난과 공격은 역설적으로 야노마뫼 족을 통해 관찰한 인간의 본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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