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대접받는 기업…“법인격의 지배를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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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대접받는 기업…“법인격의 지배를 파헤치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3.07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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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하트만의 『기업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

▲ 1886년 산타클라라 카운티와 서든퍼시픽철도회사의 소송에서 법원은 기업에 인간성을 부여했다.
“기업이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인위적인 존재로서 오로지 법률적 사고 내에서만 존재한다. 기업은 법의 창조물에 불과하고 법에서 명시적으로 또는 그 존재에 부수적으로 부여한 특징을 지닐 뿐이다. 그 특징이란 본래 기업이 창조된 목적에 맞게 최적화된 것이다.”

1819년 존 마셜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정의한 기업은 오늘날까지 상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70여년 뒤 존 마셜의 정의는 미국의 지방법원에 의해 뒤집어진다. 1886년 산타클라라 카운티와 서든퍼시픽철도회사의 소송에서 법원은 기업에 인간성을 부여했다.

미국 수정헌법에서 평등하게 보호해야 할 대상을 지칭하는 영어단어는 ‘person’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표기할까. 기업, 즉 법인은 인공적 인간이다. 영어로는 ‘artificial person’으로 표기한다.

똑같은 ‘pers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거대 기업들은 수정헌법의 ‘person’ 안에 법인이 포함된다고 끈질긴 소송을 제기해 결국 1886년 승리의 판례를 얻어냈다.

이때부터 미국은 기업이 지배하는 나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었다.

기업들이 정부와 인간을 상대로 한 수많은 소송에서 승리를 안겨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 판결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고, 후세에게는 그 결과가 어떻게 왜곡돼 전달됐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방송진행자인 톰 하트만(Thom Hartmann)은 그의 책 『기업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에서 그 진실을 밝힌다.

현재 미국 정부는 기업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섣불리 조사할 수 없다. 그 법적 근거는 수정헌법 4조로 ‘인간은 부당한 수색에서 자유롭고 사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으므로 불시 점검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원래 인간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기업의 사생활까지 존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미국의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기업들이 정부 조사를 거부하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 조항으로 인해 기업의 소유주는 채무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잘못된 제품을 생산해 사람이 죽는다 해도 최소한의 벌금 외에는 처벌을 피gorks다.

기업도 인간처럼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거부한 내부고발자를 해고할 권리도 누린다.

 
‘인간의 헌법’을 ‘기업의 헌법’으로 바꿔치기 한 미국 기업의 문제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미국의 기업들이 자국을 떠나자 미국의 노동자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잃어 고통받는 한편 미국 기업들이 진출한 나라에서는 노동자 인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국가 간 체결된 다양한 협정을 통해 거대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유까지 누리게 되었다.

하트만은 미국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의 편중 현상이 슈펭글러가 『서구의 몰락』에서 언급했던 봉건제의 징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경고한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미명하에 전 세계가 새로운 형태의 봉건제로 들어서는 암울한 미래가 우리 코앞에 닥쳐왔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 모든 문제의 핵심으로 ‘기업과 인간의 불평등한 법인격’을 지목한다. 그리고 기업의 법인격을 무효화하는 것이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고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거대한 비전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쉽지 않은, 그리고 아주 긴 시간이 걸릴 싸움이라고 말한 하트만이 그의 책 마지막에 기록으로 남긴 말은 곱씹어볼 만하다.

“그래도 한번 시작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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