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을 위해서라면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다”…『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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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을 위해서라면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다”…『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6.0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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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베네치아 지도. 1567년 파올로 푸를라니 작품. <앨피 제공>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험준한 알프스를 넘고 악천후로 인한 난파와 해적의 위험이 상존하는 지중해의 거친 바다도 마다하지 않았다.

실크로드의 흙길을 따라서는 몽골제국의 수도 대도로, 페르시아 만을 경유해 향신료의 산지인 인도 남부까지 거래를 위해 그들이 가지 못하는 길은 없었다.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기는 비잔티움제국의 쇠퇴기와 맞물린다. 고대 로마제국을 이어받아 거의 1000년간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동서 세계를 잇는 관문 역할을 한 비잔티움제국은 12세기 들어 십자군으로 상징되는 서유럽의 견제와 당시 제국의 주변에서 성장하던 이슬람 세력의 도전으로 점차 힘을 잃어 갔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그 이면에는 이탈리아 상업도시와 상인들이 있었다.

12세기 후반 이미 비잔티움의 부는 거의 모두 라틴인(이탈리아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의 거만함이라며 이탈리아 상인들의 경제적 침탈과 위세를 개탄할 정도였다.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앨피)은 중세 지중해 세계를 분할했던 세 개의 문명권, 서유럽·비잔티움·이슬람의 정치적·사회적 역학관계를 조명하며 그 속에서 이탈리아 상인들의 활동상을 추적한다.

유럽과 지중해를 넘어 아시아와 인도, 아프리카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한 그들의 이탈리아 상인들은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상업과 은행 기술을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업·은행·정보 그리고 근대적 은행제도,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산업을 발전시킨 모험정신과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정치권력과 결탁해 상업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킨 일개 장사꾼이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환어음이라는 새로운 상업기술을 기반으로 물류와 자본의 흐름을 주도하고 복식부기를 이용해 자본과 상품의 이동을 효과적으로 조직한 근대 자본주의 기업가의 시초라는 점이다.

11~12세기를 전후해 지중해와 유럽 대륙 곳곳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한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 무렵 유럽 최고의 거상들로 성장했고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모직물과 향신료를 사러 온 외국인들로 붐볐다.

이러한 상업적 활기에 힘입어 이탈리아는 새로운 도약을 이루었고 마침내 유럽 근대 문화의 산실이 되었다.

오늘날 이탈리아 해군은 과거 위대했던 중세 해양도시의 업적을 기려 이 시대를 대표하는 4대 해양도시인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아말피의 깃발을 해군기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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