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山果)와 야마(野馬)…달콤한 말과 글보다는 차라리 맵고 신 말과 글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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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山果)와 야마(野馬)…달콤한 말과 글보다는 차라리 맵고 신 말과 글이 낫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26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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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71)
 

[한정주=역사평론가] 나의 시문(詩文)은 마치 20%는 달고 80%는 신 맛이 나는 산과일과 같다. 그 사람됨은 마치 30%는 성숙하고 70%는 서툰 야생마와 같다.

절반은 서툴고 절반은 능숙하다. 절반을 달고 절반은 시다. 시절은 오히려 아득한데 어찌해야 단사(丹砂)의 뺨처럼 농익은 과일이나 벽옥(碧玉)처럼 다듬은 말발굽과 같이 될 것인가.

안목을 갖춰 평론(評論)을 잘하는 사람이 시문(詩文)을 읽을 때에는 명작(名作)과 대작(大作)은 물론이고 비록 결점 있는 구절이나 잘못된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갑자기 값어치가 증가하게 되니 암암리에 주인의 미간을 살펴보면 펄떡펄떡 기뻐하는 기색이 솟구쳐 넘쳐난다.

안목이 없어서 평론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시문을 읽을 때에는 결점 있는 구절이나 잘못된 작품은 물론이고 비록 명작과 대작이라고 할지라도 형편없이 값어치가 추락하니 암암리에 주인의 미간을 살펴보면 괴로워하며 근심하는 기색이 감돈다. 값어치가 증가해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고, 값어치가 추락해도 근심하는 기색이 없다면 바로 기예나 명성에 얽매이는 노예가 아닌 사람이다.

그러나 식견이 넓고 이치에 밝은 사람과 더불어 논한다면 내가 또한 안석(案席)에 기대어 한바탕 웃을 것이다. (재번역)

僕詩文 如二分甘八分酸山果 其爲人也 如三分熟七分生野馬 半生半熟 半甘半酸 時節尙遠 何以 則果濃丹砂頰 馬調碧玉蹄乎 有眼目善評論者之讀詩與文也 鴻章鉅篇無論 雖瑕句纇什 頓增聲價 暗察主人之眉翻翻焉湧溢喜氣 無眼目短評論者之讀詩與文也 瑕句纇什無論 雖鴻章鉅篇 越落聲價 暗察主人之眉蹙蹙然隱約愁色 聲價增 而無喜氣 聲價落 而無愁色 是不奴僕於技與名者 然得與知者論 吾亦隱几而笑也. 『이목구심서 2』

달콤한 말과 글보다는 차라리 맵고 신 말과 글이 낫다. 세상은 온통 달콤한 말과 글로 가득할 뿐 참으로 맵고 신 말과 글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범하기보다는 기이한 게 낫지 않은가? 잘 길들여진 삶보다는 차라리 야생마 같은 삶이 낫다.

박제된 동물이 아무리 정교하고 아름답다고 해도 생기 없는 사물(死物)일 뿐이다. 잘 길들여진 삶이 박제된 동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야생마는 아무리 거칠고 위험하다고 해도 생기 넘치는 생물(生物)이다. 생기 없는 삶보다는 생기 넘치는 삶이 낫지 않은가?

야생마와 같은 삶은 어떤 삶인가? 나를 길들여 지배하려고 하는 세상 모든 것에 저항하는 삶이다.

그것이 체제나 권력이나 재력이든 혹은 명예나 이익이나 출세든 혹은 학문이나 사상이나 지식이든 혹은 관습이나 윤리나 도덕이든 상관없이 나의 몸과 마음을 구속해 얽어매려고 하는 일체의 것에 맞서 투쟁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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