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를 뛰어넘는 조선 르네상스의 주역 중인(中人)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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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를 뛰어넘는 조선 르네상스의 주역 중인(中人) 스토리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4.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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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화서 화원 유숙이 그린 ‘수계도’. 1853년 당시 장안에 살던 30명의 중신이 시회를 개최하는 장면이다.

조선시대의 중인 계급은 표면적으로는 양반과 평민 사이의 중간 계층을 일컫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대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면서 평민이나 심지어 천민에게도 존중받지 못한 경계인이었다.

흔히 ‘반쪽 양반’으로 불리는 서얼은 육조(六曹)와 삼사(三司) 등 중앙 관직으로의 진출이 제도적으로 금지됐다. 때문에 대부분 역관·의원·율관·산관·화원 등의 기술직 관원이나 하급 행정 관리인 경아전과 서리에 종사했다.

서얼 출신이 기술직 관원이나 하급 행정 관리가 되면 그 후손들도 대를 이어 하급 관리에 진출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이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하나의 신분층을 형성하게 된 계급이 중인이다. 즉 과거 시험을 치러 선발한 전문직 관원이 중인인 셈이다.

중인은 평생 한 직장, 한 분야에서만 종사했기 때문에 전문성이 강했다. 승진할 때마다 관청을 옮겨 다녀야 했던 양반들의 능력도 결국은 중인들의 실무 능력에 따라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중인 가운데에는 문·사·철을 뛰어넘는 비범함으로 문예부흥과 근대화를 주도했던 지식인이 다수 배출됐다.

지금으로 말하면 의료(의원), 법률(율관), 금융(계사), 외교(역관), 천문지리(음양과), 미술(화원), 음악(악공), 문학(시인) 등 전문지식 분야와 예술 및 문화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것이다.

신간 『조선의 중인들』(알에이치코리아)은 비록 왕실과 사대부 양반을 보좌하거나 나라의 한직을 채우는 인물로 취급받았지만 일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중인 계급의 인물들의 성공스토리다.

중인들이 모여 만든 문학동인 ‘송석원시사’는 조선 후기 서민문학을 이끌었고 역관시인 홍세태와 ‘달마도’를 그린 김명국은 일본에 한류 열풍을 일으킨 대표적인 중인 출신 예술가였다.

출판에 평생을 바친 장혼은 중국의 ‘천자문’을 대신할 교과서 ‘아희원람’·‘계몽편’을 편찬했고 고약전문가 피재길은 부스럼으로 잠 못 이루던 정조를 사흘 만에 완치시켜 종6품까지 오르기도 했다.

의원 허임과 백광현은 신기에 가까운 침술로 수많은 백성을 살렸고 역관 변수는 조선인 최초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사였다. 바둑천재 유찬홍은 대적할 자 없던 불패의 국수(國手)였으며 민족신문 ‘만세보’를 발행한 오세창은 조선의 1세대 신문기자였다.

그들은 탁월한 외국어 실력과 열린 사고로 서양의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는 문화 메신저였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염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을 구해낸 용기 있는 히포크라테스였으며 과학적 사고로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온몸으로 실천한 신지식인이었다.

성리학의 탁상공론에 빠져 정쟁만을 일삼던 사대부도 실천적 지식으로 무장해 사회적 영향력이 커져가는 중인 계층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몇몇 왕과 사대부는 중인의 비범한 재능과 실천적 사고를 높게 여기며 측근에 두고 교류하기도 하였다.

추사 김정희,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번암 채제공, 구암 허준, 겸재 정선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정조는 당시 서얼금고법으로 인해 중인이 벼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규장각에서 서적을 검토하고 필사하는 일을 하는 검서관직을 신설해 서얼 출신 지식인을 등용한 군주였다.

 

이때 임명된 초대 검서관은 유득공·이덕무·박제가·서이수였다. 당대에 가장 명망 있는 중인 출신인 이들을 가리켜 ‘4검서’라 불렀는데, 정조는 이들과 함께 신학문을 연구하면서 문예부흥의 초석을 쌓았다.

중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왕족 가운데는 뜻밖에도 흥선대원군이 있다. 대원군은 안동 김씨를 비롯한 권력층을 견제하기 위해 아전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면서 수많은 중인 서리를 사조직으로 흡수하는, 이른바 ‘아전정치’를 폈다.

고전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저자 허경진 교수는 “문과 출신보다는 가계의 전문가가 대접받는 지금이 어쩌면 중인이 꿈꾸던 시대였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나라가 새롭게 도약하기를 꿈꾸는 이 시대에 중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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