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효율성을 거부한, 쓸모없어 보이는 인문학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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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효율성을 거부한, 쓸모없어 보이는 인문학의 가치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4.03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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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와 효용은 최선의 가치로 여겨진다. 모든 정책과 판단은 철저히 이윤과 시장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이익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문화·예술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경제적인 수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간의 지적 활동에 영감을 주는 고전교육, 순수학문 탐구, 예술 활동에 대한 물적 지원이 중단되면서 인문학의 토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인문학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쓸모없는 것의 생산을 거부하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달려가기만 한다면 결국 정신력이 황폐해지고 상상력이 고갈돼 어리석은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적인 것과 더욱 멀어지게 된다.

인간의 삶과 정신을 풍성하게 하고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문화·예술·철학과 같이 이윤을 생산하지 않는 잉여가치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다.

신간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있음』(컬처그라퍼)은 쓸모없어 보이는 인문학이 실제로 얼마나 소중하고 쓸모 있는 것인지를 위대한 철학가들과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강조한다.

르네상스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고전문학 출판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저자 누치오 오르디네그는 고전문학과 철학작품에 담긴 다양한 사례를 통해 효용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 엄중한 경고를 보낸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예술가가 되는 것은 계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무처럼 성숙하는 것이다. 나무는 수액을 재촉하지 않는다. 나무는 폭풍우 치는 봄날에도 평온을 느낀다. 여름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시는 성급함과 유용함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사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려면 쓸모없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이 생존하려면 근원적인 생체 기능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쓸모없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돈과 이익의 파괴적인 힘으로부터 지식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인간의 신성함은 유용함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철학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비록 실용적인 가치는 떨어질지언정 인문학이 얼마나 가치 있고 쓸모 있는 학문인지를 알려준다.

플라톤에서 하이데거, 단테에서 위고와 마르케스에 이르는 위대한 철학자들과 작가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통해 이기주의가 판치는 경제적인 위기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구원하고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최고의 가치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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