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세계화가 만든 불평등한 세계…“원조·공정무역은 대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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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세계화가 만든 불평등한 세계…“원조·공정무역은 대안이 아니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4.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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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다이아몬드 광산을 가졌음에도 기업의 눈치를 보며 몰래 다이아몬드를 팔아야 하는 짐바브웨, 콜탄으로 내전이 지속되는 콩고민주공화국, 세계1위 카카오 생산국이지만 자국민은 굶주리는 코트디부아르, IMF의 잘못된 권고로 대량학살이 발생한 르완다, 다국적기업의 콜센터에서 일하는 필리핀 사람들, 새우양식을 위해 자신들의 삶터를 파괴해야 하는 맹그로브 숲 주민들….

이들 빈곤국가의 공통점은 혁신의 부재, 지속되는 내전과 정치 불안정, 탐욕스럽고 무능한 독재자, 창의적 마인드의 부족 그리고 개발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열대기후와 게으른 국민성 등이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지적되는 이 같은 내적 요인만으로 이들 국가의 빈곤을 해석하는 것은 편협된 시각에 불과하다. 국가의 빈곤을 내적 요인에서 찾는 이 같은 시각은 한 국가의 발전과정이 다른 국가의 발전과정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세계체제론이나 종속이론을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이 지적해왔듯이 선진국이 발전했던 주된 원인은 주변부 국가들에 대한 침탈과 착취에 의한 것이고, 그들의 발전은 주변부 국가들의 저발전과 빈곤을 고착화시켰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검증해내고 있다.

한 지역에 특정작물을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플렌테이션은 주곡을 재배하는 면적을 줄이게 하는 등 식민지 주민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하곤 했다.

왜 가나는 초콜릿으로 유명하고, 코스타리카는 커피로 유명하고, 스리랑카(실론)는 차로 유명할까? 마치 특정작물이 한 국가를 대표하는 듯한 인상을 받으면서 그 나라의 전통 속에서 그러한 작물들이 재배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철저하게 제국주의 국가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다.

바나나공화국이란 말은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반영한 말로, 한정된 일차생산품의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지해 주로 미국 등의 외국 자본에 제어받으며 부패한 독재자와 그 수하가 정권을 장악한 정치적으로 불안한 작은 나라를 가리키는 경멸적 용어다.

이 말은 보통 냉전 시절 미국에게 휘둘리던 엘살바도르, 벨리즈, 온두라스, 과테말라 같은 중앙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지칭했는데, 넓게 보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지역의 국가에 쓰이는 경우도 있다.

 

신간 『빈곤의 연대기』(갈라파고스)는 이처럼 무의식 중에 소비하는 일상적 재화들이 빈곤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추적해냄으로써 세계가 불공정한 경제체제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가난한 나라가 처한 빈곤의 속성을 파헤치고 제국주의의 식민정책과 지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이 어떻게 빈곤을 확대 재생산하고 고착화했는가를 연대기적 맥락에서 보여준다.

예를 들어보자.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은 서구 중심의 세계 재편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약탈해온 금과 은은 유럽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금과 은을 비롯한 수많은 자원을 가져온 스페인은 부강해지지 못했다.

제조업이 발전하지 못한 스페인은 원자재를 싼 값에 팔고, 영국 같은 나라로부터 비싼 값에 공산품을 수입했다. 영국,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이처럼 스페인이 수탈해온 금과 은을 성장동력으로 삼아 근대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갖추면서 더욱 발전했다.

이들 발전국가는 초기에는 보호무역을 통해 자국의 산업을 철저히 보호한 뒤에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발전하지 못한 나라에 자유무역을 강요함으로써 발전의 통로를 막아버린다.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는 이를 가리켜 ‘사다리 걷어차기’라 했다.

이렇게 발전한 나라들은 곳곳에 식민지를 두어 식민지에서 생산된 1차생산품을 싸게 사오고 대신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식민지에 비싸게 팔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식민지는 자원의 공급지이자 제품의 소비지로 전락했으며, 부를 축적할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고 그러한 구조는 고착화됐다.

선진국의 이른바 자유무역은 실제로는 약탈이나 다름없었다.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적 약탈을 통해 아프리카 사람들은 노예로 끌려갔으며, 인도인들은 3000년 이상 꽃피웠던 면방직 산업을 버리고 차밭이나 아편밭의 노동자가 돼야 했다. 온두라스 정부는 자국의 농부들이 미국인의 아침식사를 위해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받고 바나나를 키우게 했다.

스페인 제국이 무자비하고 세련되지 못한 약탈을 통해 이 연대기의 첫 부분을 써내려갔다면 세계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한 영국 등 유럽 여러 제국들은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식민지배와 무역을 통해 조금은 더 우아하게, 그러나 똑같이 약탈적인 방식으로 빈곤 연대기의 페이지들을 차례로 채워나갔다.

이후 전통적인 제국주의에서 신제국주의 정책, 신자유주의 정책 등 여러 형태로 변형되면서 고착된 불공정한 경제체제는 확대 재생산됐다.

현대에 와서는, 특히 IMF와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 그리고 다국적기업들이 국가를 대신해 불공정한 체제를 지탱하는데 앞장선다. 오늘날의 세계는 이처럼 무장해제당한 채 구석으로 내몰린 빈곤한 국가가 중무장한 부유한 국가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게임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저자들은 전 세계 각국 및 국제기구가 제공하는 빈곤국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원조와 공정무역에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원조나 공정무역이 지닌 헌신과 가치를 평가절하 할 수 없지만, 그것의 이면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가령 원조의 경우 자칫 현지의 산업 기반 형성에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고, 원조자금을 독재자가 착복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공정무역에 참여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정치적 결정을 요구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보편적 인간애와 연민에 의존한다는 견해도 있다고 소개한다.

따라서 윤리적 소비자로서 참여하는 것에는 세계 저편에 살고 있는 이들의 빈곤에 대한 책임감이 배제돼 있으며, 그러한 참여는 지속성과 책임감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개발국의 빈곤 재생산 기제를 변화시킬 수 없다면서 공정무역의 한계를 지적한다.

▲ 브라질 쿠리치바는 도시구성원들이 빈자를 위한 도시를 만드는 데 협력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다.

대신 환경도시로 유명한 브라질의 쿠리치바와 볼리비아를 통해 가능성을 제기한다.

쿠리치바는 도시구성원들이 빈자를 위한 도시를 만드는 데 협력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다.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도 대다수의 국민이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는 최근 몇 년간 모랄레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 내 다양한 이해집단의 신뢰와 연대를 이끌어내고 여러 사회 자본을 활용하여 빈곤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저자들은 진정한 대안은 빈곤국들 스스로가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빈곤국에게 어떤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는가보다 우리의 발전이 그들의 발전을 가로막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발전할 길이 무엇인지를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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