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무궁한 조화와 기이한 장관…스승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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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무궁한 조화와 기이한 장관…스승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22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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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㊲
 

[한정주=역사평론가] 어린아이의 울고 웃는 모습과 시장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 또한 익히 관찰하다 보면 그 무엇을 느낄 수 있다.

사나운 개가 서로 싸우는 모습과 영악한 고양이가 스스로 재롱떠는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지극한 이치가 그 속에 있다.

봄날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모습이나 가을날 나비가 꽃에서 꿀을 채집하는 모습에도 하늘의 조화가 유동(流動)하고 있다.

1만 마리의 개미떼가 진(陣)을 이루고 행진할 때 깃발과 북소리를 빌리지 않아도 절도가 있고 격식이 잡혀 저절로 정비되어 있다.

1000마리 벌의 방은 기둥과 들보에 의지하지 않아도 칸과 칸 사이의 간격이 저절로 균등하게 되어 있다.

이 모두가 지극히 세밀하고 지극히 미미한 것이지만 제각각 그 속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지극히 오묘하고 지극히 변화하는 만물의 원리가 담겨 있다.

무릇 천지(天地)의 높고 넓은 것과 고금(古今)의 오고 가는 것을 관찰하면 이 또한 장관이고 기이하지 않는 것이 없다. (재번역)

嬰兒之啼笑 市人之買賣 亦足以觀感 驕犬之相閧黠猫之自弄 靜觀則至理存焉 春蠶之蝕葉 秋蝶之採花 天機流動 萬蟻之陣不藉旗鼓 而節制自整 千蜂之房不憑棟樑 而間架自均 斯皆至細至微者 而各有至妙至化之無邊焉 夫天地之高廣 古今之來往 觀不亦壯且奇乎哉. 『이목구심서 1』

옛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자연 만물을 스승으로 삼아 세상의 조화와 이치를 깨우쳤다. 어떻게 말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북학파의 일원으로 이덕무와 절친했던 홍대용의『의산문답(毉山問答)』속에 등장하는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의 대화를 주목해볼 만 한다.

사람의 입장이 아닌 하늘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람과 동물과 식물은 모두 평등하고 균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귀천(貴賤)의 등급이 있을 수 없다는 실옹의 말에 허자가 심하게 반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천지간 생물 중에 오직 사람이 귀합니다. 저 금수(禽獸)나 초목(草木)은 지혜도 깨달음도 없으며, 예법도 의리도 없습니다. 사람이 금수보다 귀(貴)하고 초목이 금수보다 천(賤)한 것입니다.”

이에 실옹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동물과 식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깨우쳐준다.

예를 들어 벌로부터는 인간 사이의 의리(義理)를, 개미에게서는 군대의 진법(陣法)을, 박쥐에게서는 예절(禮節)의 제도를, 거미에게서는 그물 만드는 법식을 각각 배워서 취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 만물 중 가장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지혜와 식견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각자 나름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사람의 스승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들이 자연 만물의 습성과 행태를 관찰하고 탐구하며 사람의 본성 및 행동과의 유사성을 찾았던 까닭 역시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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