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古今)과 삼일(三日)…내일을 예측하며 어제를 고찰하고 오늘을 통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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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古今)과 삼일(三日)…내일을 예측하며 어제를 고찰하고 오늘을 통찰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15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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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㉛

[한정주=역사평론가] 고금(古今)도 눈 한 번 깜짝하거나 숨 한 번 쉴 만큼 짧은 순간이다. 눈 한 번 깜짝하거나 숨 한 번 쉴 만큼 짧은 순간도 조그만 고금(古今)이다.

눈 한 번 깜짝하거나 숨 한 번 쉴 만큼 짧은 순간도 쌓이면 쉽사리 고금(古今)이 된다.

또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수레바퀴처럼 끝없이 번갈아 돌아가지만 새롭고 다시 새로울 뿐이다. 이 가운데서 태어나고, 이 가운데서 늙어간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 ‘삼일(三日)’, 즉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유념한다.(재번역)

一古一今 大瞬大息 一瞬一息 小古小今 瞬息之積 居然爲古今 又昨日今日明日 輪遞萬億 新新不已 生於此中 老於此中 故君子着念此三日. 『선귤당농소』

고(古)와 금(今), 고(古)와 신(新)의 관계는 이덕무와 박지원이 평생 고뇌한 문학적 주제이자 철학적 문제다. 이덕무는 ‘작고양금(酌古量今)’, 박지원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주장했다.

이덕무는 말한다. 세속에 초탈한 선비는 하는 일마다 ‘고(古)’만을 따른다. 세속에 물든 선비는 하는 일마다 ‘금(今)’만을 따른다.

서로 배격하고 서로 비난하는데 중도(中道)에 들어맞지 않는다. 스스로 ‘옛 것(古)’을 참작하고 ‘지금의 것(今)’을 헤아린다. 이것이 바로 ‘작고양금(酌古量今)’의 철학이다.

박지원은 말한다. “어떻게 문장을 지어야 하는가? 이 문제를 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옛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세상에는 옛것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면서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이 때문에 세상에는 괴상한 헛소리를 지껄이며, 도리에 어긋나고 편벽되게 문장을 지어 놓고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박지원이 제자인 박제가의 시집, 즉 ‘초정집(楚亭集)’에 써준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화에 통달할 수 있고, 또한 새롭게 창조하면서도 내용과 형식에 잘 맞추어 글을 지을 수만 있다면, 그러한 글이야말로 바로 지금의 글이자 옛 글이기도 하다.”

옛 것을 바탕으로 삼되 새롭게 창조하라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문학이다.

‘고(古: 옛 것)’를 배우고 익히되 항상 ‘지금의 것(今)’과 ‘새로운 것(新)’을 발견하고 창조한다. 그리고 ‘지금의 것(今)’과 ‘새로운 것(新)’의 발견과 창조에는 이미 ‘옛 것(古)’의 뜻과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한다면 옛 것과 지금의 것과 새로운 것은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쉼 없이 돌아간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 역시 수 없이 교대하며 굴러가지만 항상 새롭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결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를 고찰하면서 오늘을 통찰하고 내일을 예측한다. 오늘을 통찰하면서 어제를 고찰하고 내일을 예측한다. 내일을 예측하면서 어제를 고찰하고 오늘을 통찰한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역사의 수레바퀴에 넣으면 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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