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기이한 구경거리…사물의 본질보다는 개성
상태바
한 가지 기이한 구경거리…사물의 본질보다는 개성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07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㉔
 

[한정주=역사평론가] 내가 예전에 서리 조각을 보니 거북 무늬와 같았다. 최근에 다시 보니 어떤 것은 비취 털과 같고, 또 어떤 것은 아래에 작은 줄기 하나가 있는데 아주 짧고 가늘고 위에는 마치 좁쌀처럼 보이는 것이 서로 모여 있는데 반드시 여섯 개가 모두 뾰쪽하게 곧추 서 있었다.

대개 기와에 내려앉고 나무에 달라붙어 있는 것은 아주 작고 가늘다. 마른 풀에 붙어 있는 것은 자못 생김새가 분명하고,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해진 솜이나 베에 붙은 것은 셀 수 있을 만큼 역력하여 그 기이하고 공교로운 모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매양 세밀하게 구경할 때마다 가슴속의 오묘한 생각이 마치 누에가 실을 뽑아내는 모습과 같았다.

눈과 우박은 또한 여러 종류가 있고 성애는 서리의 종류이다. 대개 눈과 우박은 공중에서부터 이미 형태를 만들어 내려오기 때문에 낮과 밤이 따로 없다.

그런데 서리와 성애는 기운이 겨우 물건에 붙으면 비로소 형태를 이루고 그대로 붙어 엉기니, 이것은 다만 밤을 타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서리는 단지 바깥으로 노출된 곳에서만 생기는데, 생각하건대 기운이 곧장 내려와서 그러한 것인가. 성애는 서리와는 크게 달라서 마치 처마 사이의 깊숙하고 은밀한 곳이라고 해도 만약 나무 조각이나 갈대 혹은 헝클어진 터럭과 엉켜있는 실만 있으면 아무런 이유 없이 그곳에 꽃을 피운다.

이와 같이 대개 안개 기운과 같은 종류가 하늘과 땅 사이에 빽빽하게 가득 차서 가로 흘러넘치고 급하게 내달아 비록 처마 사이라고 해도 기운이 통하는 곳에는 들어가서 꽃을 피울 따름이다. 이 또한 한 가지 기이한 구경거리다. (재번역)

余前見霜片如龜文 近又見或如翡翠毛 或下有一微莖甚短細 上必有如粟粒者相聚必六箇 皆矗矗直立 大抵着瓦者着木者甚微細 着茅茨者頗分明 着曝露之敗絮壞布者歷歷可數 其奇巧不可勝言 余每細玩 胷中妙思 如蠶抽絲耳 雪雹之類亦有數種 霿淞花霜之類也 盖雪雹自空中已成形而下 故無論晝夜 霜及霿淞花 氣纔着物 始成形而仍粘凝 是只乘夜爲之故耳 且霜只露天處生了 意者氣直下歟 霿淞花大異於霜 如簷間奧密處 若有木柹茅葦 或亂髮棼絲 無不緣而生花 此盖霧氣之類 密塞天地 橫溢奔逐 雖簷間氣可通處 則橫入而生花耳 此亦一奇玩. 『이목구심서 1』

보통의 사람에게 서리는 모두 똑같은 서리다. 그러나 서리 또한 각양각색의 차이가 있다.

이덕무의 절친한 사우(師友)였던 박제가는 사람들을 향해 세상 온갖 꽃을 ‘홍(紅)’이라는 한 글자와 ‘붉다’는 한마디 말로 가두지 말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사람들을 위해 산봉우리에 핀 꽃을 읊는다는 뜻의 ‘위인부령화(爲人賦嶺花)’라는 제목의 시다.

무심히 지나치면 붉은 색깔의 꽃으로 보이지만 마음을 두고 세밀하게 관찰하면 붉은 색깔 속에 수백 가지 다른 색깔이 존재한다. 또한 꽃은 수백 가지 색깔 속에 다시 수천 가지의 다른 형상과 향기를 갖고 있다.

서리 또한 마찬가지다. 거북 무늬 같은 것도 있고 비취 털 같은 것도 있다. 기와나 나무에 붙은 것, 마른 풀에 붙은 것, 해진 솜이나 베에 붙은 것, 처마 사이의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 붙은 것, 갈대나 터럭과 실에 붙은 것이 모두 제각각 다르다.

더욱이 눈처럼 서리는 밖으로 드러난 곳에만 생기지만 성에는 그렇지 않다. 성에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깊숙하고 은밀한 처마 사이에서도 기운만 통하면 꽃이 생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보면 서리는 서리일 뿐이다.

하지만 자세하게 관찰하면 서리는 수많은 장소마다 제각각의 형상을 갖고 있다.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이제 서리와 성에 또한 세상의 한 가지 기이한 구경거리로 바뀐다.

관물(觀物)의 철학적 전환, 곧 사물을 관찰할 때 그 본질보다 그 개성을 파악하고 포착하는 18세기 조선의 신사조(新思潮)가 여기에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