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없는 곳은 없다…작고 하찮고 보잘 것 없다고?
상태바
벌레가 없는 곳은 없다…작고 하찮고 보잘 것 없다고?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04 0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㉑
 

[한정주=역사평론가] 하늘과 땅 사이에 벌레가 없는 곳은 결코 없다. 강한 쇠나 뜨거운 불에도 모두 벌레가 있다. 사슴에는 벌이 있고 뱀에게는 모기가 있다. 이상할 것이 없다. (재번역)

天地間 無無虫之物 鐵之剛也 火之熱也皆有虫 鹿有蜂蛇有蚊 不足異也. 『이목구심서 2』

짐승과 새와 물고기는 사람이 가까이 가면 반드시 달아난다. 오직 벌레만은 그렇지 않다.

모기는 한밤을 틈타 사람의 피를 빨고, 파리는 대낮을 노려 사람의 땀을 핥는다. 벼룩은 침상과 이불 사이에 살면서 사람의 살갗을 파고든다. 이(蝨)는 사람의 온 몸을 삶의 터전 삼아 지내면서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나 모기와 파리와 벼룩과 이는 사람의 몸 밖에 있기 때문에 사람의 몸 안에 살고 있는 온갖 기생충과 비교하면 더 낫다고 하겠다.

모기의 해로움은 사람의 살갗을 뚫어 종기와 고름이 나고, 이의 해악은 상처를 내어 머리카락을 잘라내는데 그치지만 회충의 해로움은 사람의 머리까지 올라와 목숨을 잃게 만든다.

이옥의 『백운필(白雲筆)』에 나오는 벌레(蟲) 이야기다.

그렇다면 사람이 비록 만물 가운데 가장 우월하다고 거만을 떨지만 모기와 파리와 벼룩과 이을 물리치지 못하고 심지어 기생충은 어찌할 도리조차 없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사람이 더 우월한지, 벌레가 더 우월한지 알지 못하겠다.

더욱이 벌레는 사람이 무서워하는 맹금(猛禽)과 맹수(猛獸)조차 두려워하는 존재다.

예를 들어보자. 매와 새매가 비록 날쌔고 빠르지만 자기 발 사이의 모기를 피할 수 없다. 호랑이와 표범은 사납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지만 자기 턱 아래의 이를 제압할 수 없다.

이치가 이와 같은데 어떻게 작고 하찮고 보잘것없다고 멸시할 수 있겠는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