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표면 아래 존재하는 ‘비극에 대한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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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표면 아래 존재하는 ‘비극에 대한 불안’
  • 한정주 기자
  • 승인 2023.05.1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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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⑬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삶의 본성:불예측성과 불확실성Ⅱ
장 오귀스트 도미니끄 앵그르의 작품 오이디푸스와 스핑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끄 앵그르의 작품 <오이디푸스와 스핑크>

[한정주=고전연구가] 오이디푸스가 테바이의 왕이 되기 직전 이 도시국가는 ‘스핑크스’라는 괴물 때문에 절망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스핑크스는 상반신은 여자 하반신은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이다.

스핑크스는 바위 위에 앉아 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가로막아 세우고 수수께끼를 내서 풀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잡아먹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그 괴물에게 걸려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 셈이다.

스핑크스의 소문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그 괴물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바위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특히 스핑크스는 테바이가 외부로 통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테바이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과 공포는 거의 패닉(공황) 상태에 가까웠다.

스핑크스가 불러온 재앙 때문에 테바이 사람들은 당시 자신들의 주인 라이오스 왕이 백주대낮에 길거리에서 살해당한 사건을 밝혀 범인을 색출하는 의무조차 방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테바이 부근을 지나가던 나그네 오이디푸스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오히려 대담하게 스핑크스를 찾아가 수수께끼를 풀어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자신을 찾아온 오이디푸스에게 스핑크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수께끼, 즉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냈다.

오이디푸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인간이다!”고 대답했다. 스핑크스는 자신의 수수께끼가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는 절대 풀 수 없는 문제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너무나 쉽게 풀어버렸다. 스핑크스는 엄청난 충격을 받아 결국 바위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식인 괴물 스핑크스의 재앙에서 벗어난 테바이 사람들은 오이디푸스를 영웅으로 극진하게 대접했다. 그리고 테바이를 구한 영웅 오이디푸스를 자리가 비어 있던 왕좌에 앉혔다.

테바이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죽은 라이오스 왕의 아내 이오카스테 왕비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였다. 담대한 용기에다 현명한 지혜까지 갖춘 영웅 오이디푸스가 다스리는 테바이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절정의 행운과 행복을 누렸다. 오이디푸스 왕은 왕비 이오카스테를 너무나 사랑했고 이오카스테 역시 오이디푸스 왕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오이디푸스 왕과 이오카스테 왕비는 부모된 사람에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2남2녀의 자녀까지 두었다. 이보다 더 좋은 삶이 존재할까 싶을 만큼 왕의 지위에서도, 남편의 자리에서도, 부모의 위치에서도 오이디푸스 왕은 최고의 영광과 최대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테바이 사람들은 물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오이디푸스를 존경과 선망의 눈길로 우러러보았다. 심지어 오이디푸스의 모든 영광과 행복은 마치 그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굴러온 행운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오이디푸스라는 남자는 당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행운의 아이콘’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행운과 행복의 표면 아래 은밀하게 숨어 있던 ‘비극의 불안’은 테바이에 불청객처럼 찾아든 뜻밖의 재앙으로 자신의 잔혹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두 번째 비극이 등장한다. 그것은 ‘파테이 마토스(pathei mathos)’, 즉 삶은 고통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이 새긴 이 경구(驚句)에는 사람은 고통을 겪지 않는 한 자신의 행위가 낳은 결과를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존경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행운과 지혜의 아이콘’ 오이디푸스 왕 역시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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