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관찰…박쥐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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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관찰…박쥐와 벌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2.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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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⑯
 

[한정주=역사평론가] 틈이 난 집 들보에 박쥐가 여러 마리 날개를 펴고 붙어 있었다. 나무 끝으로 찔러보니 쇠를 치는 소리가 났다.

그 밑에 죽은 벌이 무더기로 쌓였는데 모두 머리가 없었다. 그제야 박쥐가 벌의 머리를 먹는 것을 알았다.

야명사(夜明砂)를 가루로 만들어 보니 번쩍번쩍하는 것이 모두 벌의 머리와 눈이 부서진 것이었다.

그러나 낮에 보지 못하는 놈이 어떻게 벌을 잡겠는가. 또 벌의 집은 박쥐가 들어갈 수가 없다. 낮이라도 벌은 사냥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일찍이 그 큰 놈을 잡아서 초(醋)를 발랐더니 온몸이 붉어졌다. 그 발을 구리실로 묶어서 대통 속에 넣어 두었는데 아침에 보니 도망가고 없었다. (재번역)

屋樑木理裂坼 衆蝙蝠次第布翅而伏 試以木尖築之 聲如戛鉄 其下堆積枯蜂皆無首 始識蝙蝠食蜂頭也 屑夜明砂 則閃閃者皆蜂頭眼之破碎也 然晝不能視 則安得捉蜂也 且蜂窠非渠所可入也 雖晝蜂或可獵耶 未可知也 嘗捕其大者 澆之以醋 渾身酣紅 以銅絲鎖其足 囚于竹筒 朝視廼逃去矣. 『이목구심서 1』

야명사(夜明砂)는 박쥐의 똥이다. 몸에 난 종기나 부스럼 혹은 안질(眼疾)을 고치는 약재로 쓰였다.

박쥐를 살펴보다가 머리가 없는 죽은 벌을 발견한다. 박쥐가 벌의 머리를 먹는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그러나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박쥐 똥을 찾아 시험해보기로 마음먹는다.

박쥐 똥을 가루로 만들어보니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데 모두 벌의 머리와 눈이 부서져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이쯤에서 이덕무의 박물학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문헌과 기록에서 본 지식과 정보를 해석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한 축이었다면 일상생활에서 얻게 된 지식과 정보를 직접 탐구하고 실험하는 작업이 또 다른 축이었다.

전자가 ‘고증(考證)과 변증(辨證)의 학(學)’이라면, 후자는 ‘실증(實證)의 학(學)’이라고 하겠다.

박쥐가 벌을 먹이로 한다는 사실은 문헌과 기록을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가 아니다. 일상생활과 실험 과정을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다.

나는 이 순간 이덕무를 방 안에서 서책이나 뒤적이던 유학자 곧 서생(書生)이 아니라 자연과학자 곧 생물학자로 재발견한다.

이덕무와 절친했던 사우(師友)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특정 분야의 전문가였다. 이덕무는 박물학자, 박지원은 문학가, 홍대용은 천문학자, 박제가는 사회개혁가, 유득공은 역사학자, 정철조는 돌과 조각칼을 잘 다루는 공장(工匠), 유금은 기하학자(幾何學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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