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본성으로 풀어본 금융사태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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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성으로 풀어본 금융사태의 본질
  • 조선희 기자
  • 승인 2013.11.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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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에 대한 우리의 고집스런 편견들 해부

금융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제위기를 촉발시킨 주된 원인으로 ‘금융업계의 탐욕과 무책임’이 지목되며 집중포화를 맞은 탓이다.

특히 지난 2008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금융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한 나라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퍼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런 발단으로 2011년 미국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은 전 세계 80여개국, 1500여개 도시로 확산됐다. 이 사건은 결국 가라앉았지만 금융업에 대한 비난여론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 최근 동양증권 사태는 금융업계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금융은 역사적으로 소수 엘리트 계층에게만 접근이 허용된 특혜였다. (사진제공:투기자본감시센터)
본래 금융은 초창기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는 금융의 어원과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원래 ‘금융(finance)’의 어원은 라틴어 ‘finis’에서 왔는데 그 말은 목표(end 또는 goal)를 뜻한다. 이는 금융이 단순히 ‘돈을 버는 기술’이라기보다는 ‘어떤 목표를 이루는 수단’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봐도 금융은 산업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시장의 리스크를 일정 부분 흡수하며 산업혁명, 최근의 정보디지털 시대를 앞당기는 데 기여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인 모기지(주택 담보대출)도 원래 유동화를 통해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주택구입자에게 대출을 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집값 상승에 대한 잘못된 예측 및 과도하게 낙관적인 신용평가의 문제이지 모기지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게 <새로운 금융시대>(Finance and the Good Society)의 저자 로버트 쉴러(예일대 교수)의 입장이다. 그는 이러한 금융위기 당시를 ‘마치 고속도로에서 모든 차들이 규정 속도보다 조금씩 빨리 달리는 것과 같았다’고 비유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선의의 운전자들도 규정을 위반하게 된다. 즉 운전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설계된 고속도로가 문제인 것이다.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로 금융기관들이 범죄자인 게 아니라 그러한 집단적 오류를 만들어낸 금융 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이다.

위험투자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한 주식이나 채권도 다른 면에서는 기업에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하며 펀드 또한 사회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자금을 제공해준다. 또한 보험, 적금, 종합자산관리계좌, 연금 등은 개인의 어려움을 개선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해왔다. 이렇듯 우리는 직간접적 금융의 영향권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금융이 인간이 만든 발명품이고 아직 미완성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어차피 써야 한다면 제대로 된 발명품을 만들어 쓰는 게 가장 실리적 방법이라는 로버트 쉴러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미완성의 발명품
우리는 금융관계자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으며 몇몇 직업군에 대해서는 그 반감이 더 크다. 로비스트는 그러한 대표적 직업군 중 하나일 것이다. 금융업계는 업계 이익을 위해 정책당국 및 의회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그들이 부당하게 이득을 챙기는 어둡고 베일에 싸인 세력이기만 할까?

로비스트도 긍정적 효과가 있다. 대부분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책 당국 및 입법 담당자들은 로비스트로부터 많은 정보를 취득한다. 만약 특정 사회집단을 대변하는 로비스트가 없다면 어떤 정책이 그 사회집단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을 파악할 수 없다. 특히 금융권의 경우 특정 정책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할 수 있는 집단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로비활동은 필수적이다.

트레이더 또한 마찬가지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을 그저 주식을 사고팔며 돈을 버는 도박사와 유사하다고 여기지만 어떤 시장에서든 상품을 계속 사고파는 사람들이 있어야 시장의 유동성이 유지된다. 그런가 하면 일반 은행보다 위험 성격을 띄는 투자은행은 사회구성원간의 거래를 주선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에두아르도 새버린과 마크 주커버그가 만들었는데 이 두 사람의 주식보유율은 시간이 지나며 차이가 나고 자연스럽게 운영권도 변화되었다. 이는 투자은행을 통한 주식발행, 유상증자 등의 딜의 결과인데, 이러한 기능이 없다면 현실은 소송으로 가득한 전쟁터의 상황이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흔히 좋지 않은 편견을 갖고 있는 여러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저 나름대로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쉴러는 이 책에서 ‘금융’과 ‘좋은 사회’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화두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는 이 책을 출간한 후 여러 사람에게 항의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금융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책의 메시지가 금융을 약탈자라고 느낀 많은 사람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그러나 그가 책에서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금융은 결코 돈을 빼앗는 약탈자가 아니며 인류문명을 진보시킨 주체이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근거 없는 낙관론이라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로버트 쉴러가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그는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이자 2000년 이후의 금융위기(닷컴버블, 서브프라임 사태)를 정확히 예측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 은행의 민주화는 좋은 사회로 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그중 눈여겨볼 만한 은행 사례가 바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Grameen) 은행이다.
인간미 넘치는 금융업
로버트 쉴러는 이 책에서 미시·거시적 관점을 넘나들며 실물경제에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여러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CEO는 본인이 회사에 재직하는 기간 동안, 회사의 장기 목표를 설정해야 하지만 자존심 및 개인적 관심사, 짧은 재직 기간 때문에 도덕적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적당한 스톡옵션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스톡옵션 보상체계는 주가의 하락을 막기 위해 기업의 중요한 정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로버트 쉴러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업 CEO들의 보상액은 상당부분을 재임기간이 끝나고 5년 후에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은행의 역할 또한 중요하게 지적한다. 기업은 은행으로부터 지속적인 운영자금을 대출받아야 하기에 은행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은행의 모럴해저드가 발생한다. 하지만 은행의 민주화는 좋은 사회로 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그중 눈여겨볼 만한 은행 사례가 있는데 바로 방글라데시에 있는 그라민(Grameen) 은행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미소금융)라는 명칭으로 시작한 이 은행은 민간 주도로 빈민과 여성에게 소자본 창업자금을 지원하면서 성공적으로 안착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저자는 이러한 은행 업무의 민주화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여러 국가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두 개씩은 들고 있는 보험의 경우, 생명보험보다 더 포괄적으로 소득감소에 대비할 수 있는 생계보험 상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보험이 삶에 더욱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실제 위험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시장설계자(마켓메이커)는 인간이 겪는 문제들에 대해 시장을 통한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시장설계자인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하버드대의 앨빈 로스 교수는 금융공학의 알고리즘을 통해 신장이식이 필요한 환자와 신장기증자를 연결해주는 시장모델을 개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신장 기증을 할 경우 자신의 가족이 타인으로부터 신장을 기증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줌으로써 신장 이식의 매칭률을 크게 끌어올렸다.

로버트 쉴러는 금융이 ‘리스크 관리자’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짓거나 ‘일부 부자’들을 위한 절세 비즈니스에 노력을 경주하기보다는 ‘보다 많은 사회구성원’을 위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한다. 금융이 일자리창출, 대학등록금, 서민주택, 노인빈곤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 해결을 위한 중개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금융업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금융발전을 저해하는 결정적 변수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답게 로버트 쉴러가 금융에 대해 긍정일색인 것은 아니다. 이는 그의 전작들인 <이상 과열> <야성적 충동> <버블 경제학>에서 끈질기게 논했던 ‘인간의 야성적 본성’에 대한 주장들과 일맥선상에 있다. 괜찮은 시스템을 구축해도 인간의 ‘본성’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면 시스템 자체가 힘을 잃는다. 그런데 오늘날의 금융이론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중 금융발전을 저해하는 인간의 본성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분류하기를 좋아한다. 자신과 잘 맞거나 맞지 않을 것 같은 부류를 구분해 편을 가른다. 이는 금융업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사회에서는 ‘부’를 종종 이기심, 편협심 등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사람들은 직업적 행동이 외부요인이나 환경에 의해 영향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성·성격에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표적 예로 CEO, 사업가, 은행가 등의 직업군과 자선가, 예술가 등의 직업군이 극단적으로 반대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 판단한다. 그러나 예술가나 종교인조차도 금융자산을 관리하고 금융계약을 맺으며, 각종 거래와 계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금융이든, 다른 수단을 통해서든 부를 획득한다는 것 자체는 나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대중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관습과 익숙함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금융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인 위험감수에 대한 충동과는 반대되는 개념인데,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특정 개념이 언어화될 때 사람들은 이미지를 형성한 뒤 그와 유사 개념을 가진 단어망을 구성한다.

1920년대 대공황을 거치며 인베스트먼트 펀드(investment fund)는 부정적 이미지가 컸으나 이후 뮤추얼펀드(mutual fund)라 불리며 민주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또한 회피대상으로 여겨지던 ‘주택대출’은 ‘모기지’라 바꿔 부르면서 주택의 일부분으로 인식되어 크게 성장했다. 향후 금융도 기술의 발전만 추구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개념으로 재구성하고 마케팅함으로써 좋은 이미지로 구축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 2011년 미국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은 전 세계 80여개국, 1500여개 도시로 확산됐다.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금융
최근 동양증권 사태는 금융업계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문제는 정무위 국감조차 일이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깊은 내막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그룹이 발행한 회사채, 기업 지배구조와 조직개편 등은 일반 시민이 평소 접하지 못했던 내용들이었고 CP나 회사채 등은 모두 증권이나 자본시장 파트에서 주로 다루는 상품이어서 은행에서 취급하는 예적금 상품보다 훨씬 개념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현재 금융업계가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금융은 역사적으로 소수 엘리트 계층에게만 접근이 허용된 특혜였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치며 금융의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모든 국민에게 금융의 기회가 개방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금융의 민주화와 인간화가 100프로 진전이 안 되었기에 금융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버트 쉴러는 미국 주택시장의 가격을 나타내는 케이스-쉴러 지수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경제학자라면 그럴듯한 모델보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 이 책에서도 그러한 그의 면모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현대사회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인 경제적 불평등 또한 이러한 시각에서 접근한다. 각국은 경제적 불평등 개선을 위해 누진소득세, 근로소득공제 등 다양한 조세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설정된 직접적 조세제도는 없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지수화한 후 조세에 자동 연장시켜 누진세를 부과하는 등 경제적 불평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자동안전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생ㆍ나눔ㆍ배려 등의 사회적 가치를 필요로 한다. 금융이 사회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 인식되면 금융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암담한 금융현실과 다소 반대적 입장을 취한다. 로버트 쉴러는 금융이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검토한 후, 금융이 이미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가 이 시점에서 던지는 메시지들은 우리가 이에 대한 긴급한 관심을 가질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금융을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고 금융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우리는 금융기관의 피해자가 아니라 영향력 있는 참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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