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실현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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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실현불가능하다”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9.13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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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⑦ 테네시 윌리엄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욕망한다’는 말의 의미Ⅱ
욕망 속에서 상상하고 꿈꾸는 블랑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사실주의와 진실이다. 이 두 가지는 블랑시가 애써 감추고 포장한 욕망 속 상상과 꿈을 여지없이 깨부수기 때문이다.
욕망 속에서 상상하고 꿈꾸는 블랑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사실주의와 진실이다. 이 두 가지는 블랑시가 애써 감추고 포장한 욕망 속 상상과 꿈을 여지없이 깨부수기 때문이다.

[한정주=고전연구가] 욕망의 희극성이 변화 가능성이라면 욕망의 비극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현 불가능성이다. 욕망은 갈망하지만 이룰 수 없는 경우에만 욕망이다. 이루어진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욕망하는 나는 항상 상상한 나 혹은 꿈꾸는 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현 불가능하다는 바로 그 속성 때문에 상상한 나 혹은 꿈꾸는 나의 욕망은 대개 가면과 거짓 속에 감추어진 욕망 또는 교양과 위선으로 포장된 욕망이다. 가면과 거짓, 교양과 위선 속에 감추어진(포장된) 블랑시의 욕망이 우리의 욕망과 다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감추어진(포장된) 자신의 욕망은 여린 마음을 지닌 블랑시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든다. 감추어진(포장된) 자신의 욕망이 탄로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블랑시의 불안 심리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를 작동시켜 자신이 사랑하는 스텔라와 미치를 비롯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더욱 감추고 포장하게 한다.

“사람이 여리면 여린 사람들은 희미한 빛을 발하거나 반짝거려야만 해. 나비 날개는 부드러운 색을 띠어야만 하고 불빛 위에 종이 갓을 씌워야만 해…. 여린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거든. 여리면서도 매력적이어야 해! 그리고 나는, 나는 이제 시들어 가고 있어! 얼마나 더 눈속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테네시 윌리엄스 지음, 김소임 옮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2007, p83.)

그러나 욕망을 감추고 포장하면 할수록 불안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불안이 커질수록 블랑시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더욱 더 감추고 포장한다. 블랑시의 삶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욕망과 불안 사이의 긴장감이다. 블랑시의 목소리와 태도에서 자주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만이 보이는 탈진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욕망 속에서 상상하고 꿈꾸는 블랑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사실주의와 진실이다. 이 두 가지는 블랑시가 애써 감추고 포장한 욕망 속 상상과 꿈을 여지없이 깨부수기 때문이다.

“사실주의는 싫어요. 나는 마법을 원해요! 그래요, 그래, 마법이요! 난 사람들에게 그걸 전해주려고 했어요. 나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아요.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 그게 죄라면 달게 벌을 받겠어요! 불 켜지 말아요.” (테네시 윌리엄스 지음, 김소임 옮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2007, p131〜132.)

그럼 욕망하는 블랑시, 즉 상상한 블랑시 혹은 꿈꾸는 블랑시가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타자, 즉 미치의 욕망이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러시아 태생의 철학자 알렉상드르 코제브는 우리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일 때만 인간적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우리의 욕망은 오직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만 인간적일 수 있다. 우리가 타자의 육체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때에만…. 다시 말해 만일 우리가 타자가 인간 개체로서의 우리의 존재를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욕망하거나, 사랑하거나 혹은 인정하기를 원할 때에만 말이다.” (강신주 지음, 『철학 vs 철학』, 오월의 봄, 2010, p568〜569.)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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