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공사실명제’…돌에 새겨진 한양도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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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공사실명제’…돌에 새겨진 한양도성 이야기
  • 김윤태 기자
  • 승인 2022.06.1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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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삼으면서 조성한 한양도성은 1396년 1월9일 백악과 오방신(五方神)에게 제사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20만명의 인원이 동원돼 완성됐다. 도성 곳곳에는 한양도성의 축성 과정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각자성석’이라는 성돌이 있다. 공사 담당자의 이름과 직책, 담당지역 등을 새긴 돌로, 조선판 ‘공사실명제’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각자성석은 총 297개다.

각자성석에는 공사를 맡았던 지역의 이름을 밝혀 공사 책임을 지도록 했는데 실제로 성벽이 무너지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구간을 축성한 지역 담당자에게 성벽을 다시 쌓게 한 사실이 『세종실록』에도 기록돼 있다.

성문도감(城門都監)이 계하기를 “함길도 북청부(北靑府)에서 맡아 쌓은 부분인 도성이 무너졌으니 청컨대 당초의 북청 감역관(監役官)과 두목(頭目)·총패(摠牌)에 명령하여 기한 안에 서울에 와서 수축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 25권(1424년 8월 5일)

각자성석에 적힌 많은 이름들 가운데 ‘안이토리(安二土里)’라는 독특한 이름이 눈에 띈다. 안이토리는 안타까운 사연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숙종 37년 『승정원일기』에는 안이토리가 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을 개축할 때 돌에 깔려 중상을 입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양도성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헌신으로 이뤄진 결과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금위영에서 계하기를 “이번 수구문(광희문)을 개축할 때 홍예석을 놓다 석수 안이토리가 돌에 깔려 중상을 입어 다방면으로 치료했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으니 매우 놀랍고 참혹한 일입니다. 본영에서 약간의 쌀과 포를 지급해 염을 하고 장사지내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아룁니다” 하니 임금이 알겠다고 답하고 휼전을 베풀게 하였다. 『승정원일기 1711년(숙종 37년) 4월 8일』

서울시는 이 같이 역사적 가치가 담긴 한양도성 각자성석을 보존하기 위한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한양도성 각자성석. [서울시 제공]
한양도성 각자성석. [서울시 제공]

현재까지 발견된 각자성석은 총 297개소로 내용에 따라 천자문, 군현(지명), 이름·직책 각자로 구분할 수 있다.

천자문 각자는 천자문을 통해 도성 구간을 표시한 것으로 도성 전체를 600척씩(약 180m) 97개 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에 천자문 순서대로 한 글자씩 자호를 새겼다. 현재 97개 천자문이 모두 존재하지는 않지만 한양도성 남산구간에서 일부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중구 회현동 1가 100-267)에 있는 ‘내자육백척(柰字六百尺)’ 각자성석이다. ‘내(奈)’자는 천자문의 60번째 자호로 이 구간이 한양도성의 60번째 구간이라는 것을 표기한 것이다.

군현(지명) 각자는 지방 군현의 명칭을 새긴 각자로 성벽이 무너지거나 문제가 생길 시 그 구간을 축성한 지역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름·직책 각자는 축성을 관리한 감독관의 이름과 직책, 기술자 석수의 이름까지 새겼다. 담당자의 실명을 돌에 새김으로써 도성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현장조사와 비파괴 분석 등 다양한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손상등급을 분류하고 등급에 따른 적합한 보존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총 297개 각자성석 가운데 284개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으며 내년까지 모든 조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상태조사를 완료한 각자성석 가운데 보존처리가 시급한 대상을 선별하고 손상도에 따라 적절한 보존처리를 시행해 각자성석의 원형을 보호하고 있다. 현재까지 105개소(35.3%)에 대한 보존처리가 완료됐으며 2025년까지 나머지 192개소의 보존처리를 완료할 계획이다.

3D 정밀스캔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관리·활용에도 나서고 있다. 탁본에 의한 오염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비접촉식 ‘디지털 탁본’을 통해 각자성석을 디지털 형태로 변환, 글자 판독 연구를 진행하고 각자성석 모형 안내판 제작 등에도 활용하고 있다.

3D정밀스캔 자료를 활용해 제작한 각자성석 모형 안내판은 낙산구간, 남산구간, 인왕산구간 등에 9개가 설치돼 있다. 한양도성 순성객들의 각자성석 관람편의를 돕고 당시 석수들의 글자체를 비교해볼 수 있는 재미요소가 되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추가적인 각자성석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2023년 ‘각자성석 지표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2014년 지표조사(297개소 확인) 이후 9년 만이다.

주용태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각자성석은 한양도성 축성 기록을 품은 역사 자료이자 도성 축성에 참여한 사람들의 헌신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로 가치가 매우 크다”며 “앞으로도 각자성석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서울시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통해 한양도성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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