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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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6.1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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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④ 이탁오 『분서(焚書)』…내 인생은 한 마리 개와 같았다Ⅳ
중국 취안저우 이탁오의 옛집과 흉상.
중국 취안저우 이탁오의 옛집 앞의 흉상.

[한정주=고전연구가] 공자와 맹자를 향한 조롱과 비판은 서양적 사유와 사고, 기독교적 관습과 도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비난하고 부정한 니체의 글들에 비견할 만하다.

그것은 사회적 파문과 매장을 각오하지 않는 한 감히 시도할 엄두조차 내기 힘든 혁명적 발상이자 모험이었다.

특히 이탁오는 성현(聖賢)의 가르침을 명분 삼아 사상적 통제와 이념적 공포정치를 자행하던 명나라의 성리학자에 맞서 이른바 도학자라는 놈들은 “겉으로는 도덕과 의리를 목청껏 외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부귀를 노릴 뿐이다. 옷차림은 그럴듯하게 꾸미고 다닌다. 그러나 그 행실은 개나 돼지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면서 공공연하게 반(反) 성리학을 부르짖었다.

이 때문에 이탁오는 생전 가는 곳마다 도학을 신봉하는 성리학자들의 공격을 받고 핍박을 견뎌내야 했다.

그렇다면 이탁오의 최후는 어땠을까. 나이 76세가 되던 1602년 3월 이탁오는 반도학과 반유학의 사상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다닌다는 탄핵을 받아 체포되어 투옥되고 만다.

이탁오는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끝내 간수에게서 머리를 깎는 면도칼을 빼앗아 스스로 목을 베어 죽음을 맞이하는 당당함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동아시아 철학 사상 가장 위험하고 불온했던 이단자이자 유교반도(儒敎叛徒)였던 이탁오 다운 죽음이었다.

장자, 프로이트, 푸코, 니체, 이탁오의 사유가 담고 있는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져보라는 메시지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과연 내가 만든 나의 확신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확신을 마치 내가 만든 나의 확신인 것처럼 여기고 사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보라는 주문이다.

‘철학을 배운다’는 말과 ‘철학을 한다’는 말이 있다. 장자, 프로이트, 푸코, 니체, 이탁오의 철학을 아는 것이 그들의 철학을 배우는 것이라면 그들처럼 생각하는 것은 철학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철학을 배우는 것만으로 우리의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처럼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삶 또한 천천히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것도 맹신하거나 확신하지 마라.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질문하고 성찰하라!’, 이것이 바로 장자, 프로이트, 푸코, 니체, 이탁오처럼 철학을 하는 방법이다.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혹은 내 삶의 주인이 무엇인지 회의가 든다면 지금 “누가 혹은 무엇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스스로에게 지금의 삶이 내가 만든 나의 삶인지 아니면 누군가가(혹은 무엇인가가) 만든 남의 삶을 나의 삶으로 여기고 사는 것은 아닌지 물어봐야 한다.

누군가(혹은 무엇인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욕망일 수도 있고, 가치일 수도 있고, 도덕일 수도 있고, 관습일 수도 있고, 자본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이다. 그것이 누구이고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을 지배하는 ‘만들어진 마음’의 실체를 깨닫는 그 순간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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