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아 살지 않겠다”
상태바
“남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아 살지 않겠다”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5.30 0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전 인생수업]④ 이탁오 『분서(焚書)』…내 인생은 한 마리 개와 같았다Ⅲ
중국 명대의 사상가이자 문학가 이지(李贄). 탁호는 그의 호다.
중국 명대의 사상가이자 문학가 이지(李贄). 탁호는 그의 호다.

[한정주=고전연구가] 장자가 말한 ‘성심’,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 푸코가 말한 ‘에피스테메’에 가장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철학자를 언급한다면 단연코 서양에서는 니체, 동양에서는 이탁오를 꼽을 수 있다.

니체는 1888년 세상에 내놓은 『우상의 황혼』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철학은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가치에 대한 ‘중대한 선전포고’이고 자신이 철학을 하는 이유는 ‘모든 가치의 전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서양에서 기존의 모든 가치에 대한 니체의 중대한 선전포고가 있기 300여년 전 이미 동양에서는 이탁오가 동양을 지배하는 모든 가치에 대한 중대한 선전포고를 했다.

이탁오가 1590년과 1618년 연이어 세상에 내놓은 문제적 서적 『분서(焚書)』와 『속분서(續焚書)』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탁오는 『속분서』에 실린 「성교소인(聖敎小引)」이라는 글을 통해 기존의 가치에 지배당한 나이 오십 이전의 자신은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이것은 더 이상 내가 만든 나의 마음이 아닌 누군가가 만든 남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아 사는 노예로 남지 않겠다는 ‘자기 혁명 선언’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현(聖賢)의 가르침을 읽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성현의 가르침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공자를 존경한다. 그렇지만 도대체 공자의 무엇이 존경할 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것은 이른바 난쟁이가 저잣거리에서 구경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에 따라 (실제로 보지도 못하고선) 함께 웃고 떠드는 꼴에 불과했다. 나는 나이 오십 이전에는 진실로 한 마리의 개일 뿐이었다. 앞에 있는 개가 자신의 형상을 보고 짖어대면 또한 그 소리에 따라 짖어대는 것과 다름없었다. ‧‧‧‧‧‧ 오호라! 나는 지금에 와서야 나의 공자를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다른 소리를 따라 짖지 않게 되었다. 옛날에는 난쟁이에 불과했던 내가 노년에 이르러 마침내 장인(長人: 어른 혹은 키다리)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탁오의 저서로는 『분서』와 『속분서』 외에 『장서(藏書)』가 있습니다. 자신이 저술한 책을 가리켜 ‘불살라야 할 책’이라는 뜻의 『분서』와 ‘감추어야 할 책’이라는 뜻의 『장서』라고 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이탁오는 동양 철학사 최고의 문제적 인물이자 사상적 이단자였다.

그는 이들 책에서 당시 사람들이 절대적 진리이자 보편적 도덕으로 숭상하는 공자와 맹자 같은 성현(聖賢)의 말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공격하고 비난하고 조롱했다. 특히 이탁오는 맹자를 향해서는 매우 혹독한 비판을 남겼다. 맹자의 말과 글이란 모두 일정한 논리에 집착하여 자신의 의견을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 가지 주장에 집착하지 않아야 넓고 깊게 변통할 수 있는데 맹자는 자신의 논리와 견해에 집착하느라 아집과 편견이 가득한 말과 글만 남겼을 뿐이라는 혹평이다.

“맹자의 말과 글이란 일정한 논리에 온통 마음이 매달리고 얽매여서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 죽은 언어로 사람을 살리려고 했다는 비판을 모면할 수 없다. …… 만약 한 가지로 정해진 논리에만 얽매여서 죽은 책을 보존하거나 간행해 세상과 후세에 유통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한 가지 일만을 지키려고 온통 그것에 매달리는 집일(執一)일 뿐이다. 그런데 집일이란 다시 말하자면 도(道: 진리)를 망치는 장본인일 따름이다. …… 한 가지 논리와 견해에 매달리지 않아야 마땅히 통행할 수 있고, 죽은 법식이나 법칙 따위에 얽매이지 않아야 마땅히 세상을 살릴 수 있다.” <『장서』, 덕업유신(德業儒臣), 맹가(孟軻)>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