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초자아·에피스테메…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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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초자아·에피스테메…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나의 마음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5.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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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④ 이탁오 『분서(焚書)』…내 인생은 한 마리 개와 같았다Ⅰ
북송의 화원화가 장택단이 ‘청명절’ 북송 수도인 개봉의 성대함을 그린 청명상하도의 일부. 모든 사람이 모자를 쓰고 있다.
북송의 화원화가 장택단이 ‘청명절’ 북송 수도인 개봉의 성대함을 그린 <청명상하도>의 일부. 모든 사람이 모자를 쓰고 있다.

[한정주=고전연구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수많은 생각들이 과연 내가 만든 나의 생각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나의 생각일까 하는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예를 들어보자. 1000원권 지폐 속 주인공 퇴계 이황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이다. 우리는 말과 글을 알게 될 때부터 교과서나 위인전을 통해, TV나 신문과 같은 언론매체를 통해, 혹은 선생님과 어른들의 훈육과 훈계를 통해, 심지어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통해 끊임없이 퇴계 이황이라는 사람에 대해 존경할 만한 위대한 인물이라고 들어왔다.

때문에 퇴계 이황을 왜 존경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왜 퇴계 이황을 존경해야 할까?”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자. 퇴계 이황을 존경하는 나의 생각은 내가 만든 것인가, 아니면 교과서나 위인전, TV나 신문, 선생님과 어른들의 훈육과 훈계, 인터넷의 정보와 지식이 만든 것인가.

장자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말해 나의 의지가 작동하기 이전에 누군가에 의해 구성된 마음(혹은 만들어진 마음)을 ‘성심(成心)’이라고 했다. 성심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성된 마음(혹은 만들어진 마음)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의 의지를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는 마음이다.

특히 누군가에 의해 구성된 마음(혹은 만들어진 마음)을 나는 당연히 내가 만든 나의 마음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 구성된 마음(혹은 만들어진 마음)을 통해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한다.

“대저 성심(成心)을 따라 그것을 스승으로 삼는다면 그 누군들 스승이 없겠는가? 어찌 반드시 변화를 알아 마음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자만이 성심(成心)이 있겠는가? 우매한 보통 사람들도 이런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심(成心)을 가지고 있다. 아직 마음에서 구성된(만들어진) 것이 없는데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마치 ‘오늘 월나라에 갔는데 어제 도착했다’는 궤변과 같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장자』 「내편」 <제물론(齊物論)>)

장자는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상인의 우화(寓話)를 통해 ‘성심(成心)의 작용’을 매우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송나라 사람이 모자를 장사 밑천으로 장만하여 월나라로 갔는데 월나라 사람들이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문신(文身)을 하고 있어서 모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장자』 「내편」 <제물론(齊物論)>)

중원에 자리하고 있는 송나라에서는 신분과 지위를 드러내는데 모자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자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옷을 입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만큼 모자는 필수적인 의복 예절이었다. 송나라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상인은 송나라 사람이 지니고 있는 ‘성심(구성된 마음 혹은 만들어진)’에 따라 너무나 당연하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자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확천금을 꿈꾸고 멀리 떨어진 동남쪽 바닷가 월나라에까지 모자를 가지고 가서 팔려고 했다.

월나라의 관습과 예절은 송나라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새긴 문신을 통해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고 있었다. 송나라에서는 너무나 유용한 모자가 월나라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물건에 불과했다. 결국 상인은 송나라 사람의 ‘성심(成心:구성된 마음 혹은 만들어진 마음)’, 즉 관습과 예절로 월나라를 바라봤기 때문에 생각지 않은 실패를 겪은 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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