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와 사건’…뜻밖에 찾아오는 삶의 변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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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 사건’…뜻밖에 찾아오는 삶의 변곡선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4.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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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③ 박지원 『열하일기』…클리나멘-탈주·접속·성찰·변신Ⅰ
박지원과 저서 『열하일기』
박지원과 저서 『열하일기』

[한정주=고전연구가] 삶은 왜 희극이면서 비극이고, 비극이면서 희극일까. 삶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럼 삶을 끊임없이 변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자와 사건’이다. 타자를 만나 사건이 발생하거나 혹은 사건이 일어나 타자와 조우하면 우리의 삶은 불가피하게 변하게 된다.

그런데 ‘타자와 사건’은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마주치지 않거나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부할 수도 없고 또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우리 외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희극이면서 비극이고, 비극이면서 희극일 수밖에 없다.

이 ‘사건과 타자’를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희극과 비극 혹은 희망과 절망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열하일기』의 저자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은 ‘사건과 타자’와 조우해 가장 드라마틱한 삶의 변곡선을 그린 사람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타자와 사건’은 ‘뜻밖에’ 혹은 ‘우연하게’ 찾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연암의 경우도 그랬다.

연암이 태어난 시대 조선의 권력은 노론 세력이 독점하고 있었다. 연암은 노론 세력의 핵심 가문 중 핵심 가문인 반남 박씨 태생이다. 연암의 삶은 탄생과 동시에 예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명문 양반가 자제로 과거공부를 하고 과거급제를 한 다음 고관대작이 되어 권력의 최상층부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이다.

명문가 출신에다가 타고난 문재(文才)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어느 누구도 연암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연암에게 예정되어 있던 삶의 ‘정상궤도’였다.

그런데 연암의 나이 열일곱 여덟 되는 해 삶의 정상궤도를 이탈하는 사건 하나가 연암을 찾아왔다. 다름 아닌 ‘거식증과 불면증을 동반한 우울증’이었다. 연암은 처음 자신의 삶을 덮친 이 ‘뜻밖의’ 사건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크게 당황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연암에게 기이한 선비 민옹을 소개한다. 민옹을 만난 연암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그런데 민옹은 연암을 위로하기는커녕 축하하는 것이 아닌가. 밥을 잘 먹지 못하면 식량을 아껴 재산을 불릴 테니 부자가 되는 것이고 잠을 잘 자지 못하면 깨어있는 시간이 남보다 곱절이나 많을 테니 수명이 늘어난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민옹의 위트와 유머에 한 순간 연암은 가슴이 탁 트이는 상쾌함을 느꼈다. 민옹을 만난 뒤 연암은 밥도 제대로 먹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있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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