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조의 『유몽영』…17~18세기 소품문 중 최고의 미문(美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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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의 『유몽영』…17~18세기 소품문 중 최고의 미문(美文)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3.29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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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66) 동선령에서

깊은 숲 어느 곳 꾀꼬리 앉아 있나   樹深何處坐黃鸎
모습 볼 수 없고 소리만 들려오네    不露其身只送聲
한낮 옷과 안장 온통 푸른 그림자    日午衣鞍都綠影
분 같은 앵두꽃 나를 향해 환하네    櫻花如粉向人明
『아정유고 2』 (재번역)

빗속에 벗이 머물자

사람들 봄날 길다고 말하지만       人謂春何永
따뜻한 날 빨리 지나가 나는 싫네   吾嫌煦不遲
마음 쏟아 좋은 벗 머물게 해        費心留好客
마음 다해 좋은 시절 보내려 하네   極意過良時
꽃 그림자 대지 덮고                 大地蒙花影
비 기운 먼 하늘 가득하네           遙空滿雨絲
괴상한 천성 몹시도 기이하여       怪來生甚異
술 취하면 문득 시 짓는구나         被酒輒能詩
『아정유고 2』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시를 쓰듯 쓴 산문이 좋고 산문을 쓰듯 쓴 시가 좋다.

시를 쓰듯 산문을 써야 글 속에 호흡과 리듬과 여백과 여운이 있게 된다. 산문을 쓰듯 시를 써야 시 속에 감정과 생각과 뜻과 기운을 다 담을 수 있게 된다.

17~18세기 조선과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소품문 중에서 최고의 미문(美文)을 꼽는다면 단연 장조의 작품인 『유몽영(幽夢影)』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린위탕은 영어로 수필을 써서 중국 문화를 서구 세계에 알린 인물로 루쉰과 함께 현대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수필가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을 대표하는 수필집 『생활의 발견』에서 일상적인 삶의 풍경 속으로 들어오는 자연 만물을 묘사하는 『유몽영』의 탁월한 표현 기법과 미학 의식에 대해 극찬한다.

“자연은 모든 소리이기도 하고 모든 색깔이기도 하고 모든 모양이기도 하고 모든 감정이기도 하고 모든 분위기이기도 하다. 지적이면서 동시에 감각적인 생활 예술가인 인간은 자연 속에서 적당한 감정을 선택해 그것들을 자신의 삶 전체와 조화시킨다. 이것은 시는 물론이고 산문을 짓는 중국의 모든 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태도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탁월한 표현은 장조의 『유몽영』 속 에피그램(epigram)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몽영』은 수많은 문학적 에피그램을 모아 엮은 저서이다. 이처럼 문학적 에피그램을 모아 엮은 중국의 서책을 쌓아놓는다면 한 무더기가 될 만큼 많다. 그러나 장조가 직접 쓴 『유몽영』과 비교할 만한 서책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유몽영』에서 장조는 자기 주변의 일상 풍경을 혹은 담담하게 혹은 격정적으로 혹은 미려(美麗)하게 혹은 읊조리듯 혹은 직관적으로 혹은 천진하게 혹은 호소하듯 혹은 분석적으로 혹은 고상하게 혹은 분위기 있게 담아내고 있다.

이덕무가 시에 담은 일상의 다종다양한 소리와 감정과 색깔과 모양과 분위기를 장조의 에피그램 역시 담고 있다. 특히 이덕무와 장조는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썼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이덕무의 시와 꼭 닮은 장조의 에피그램 한 편을 읽어보자.

“푸른 산이 있으면 바야흐로 푸른 물이 있다. 물은 오직 산에서 푸른 색깔을 빌렸을 뿐이다. 맛과 빛깔이 좋은 술이 있으면 곧 아름다운 시가 있다. 시 역시 술에서 아름다운 감정을 구걸한 것이다.”

이덕무와 장조는 시간도 함께 하지 않고 공간도 함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물의 이치를 꿰뚫은 두 사람의 시와 산문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지 않아도 마치 한 마음에서 나온 다른 글처럼 그곳에 담은 뜻과 기운이 닮았다.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뚫고 공감하고 교감하며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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