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오(得悟)…깨닫는다는 것
상태바
득오(得悟)…깨닫는다는 것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3.08 0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덕무 詩의 온도](63) 깨달음이 있어서

홀로 뛰어난 기상 비추어 품은 뜻 맑으니      獨照英英秉志澄
쌀 소금 자질구레한 일 재능 없구나           米鹽零瑣管無能
한더위 갖옷 입은 늙은이 늘 생각하니         長懷盛暑披裘叟
긴 장마 밥 싼 친구 항상 외롭구나             久寂淫霖裏飯朋
중국 문장 잘 감상한 듯                        中國文詞如善玩
옛사람 마음 거의 이어받으리                 古人心事庶可承
이리저리 거닐며 품은 심정 기쁘게 하고자    逍遙便欲怡襟抱
오직 나라 안 명산 마음에 엉겼네              海內名山想只凝
발 빛 밝게 나를 둘러싸고                      簾光圍繞炯然吾
긴 낮 텅 빈 서재 아무 일 없네                 晝永虛齋一事無
못 난 돌 옷 입어 온통 좋아지니               醜石生衣通體好
맑은 구름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즐기네    澹雲無蒂任心娛
배움 앞서 초탈하면 주자의 정통 아니고      學先超脫非朱嫡
지나치게 시 모방하면 두보의 노예일 뿐이네  詩太依模卽杜奴
오랜 고요함 더위 피하는 방법인 줄 알겠고   久靜元知銷暑法
서늘한 기운 벽에 그린 연꽃에서 나오네      涼生壁半藕花圖
『아정유고 2』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독서를 하든 혹은 글을 쓰든 혹은 시를 짓든 혹은 학문을 하든 얽매이거나 걸리는 것이 없어야 비로소 깨달아 얻는 것이 있게 된다.

독서할 때 얽매이게 되면 책의 노예가 될 뿐이요, 글을 쓸 때 얽매이게 되면 글의 노예가 될 뿐이요, 시를 지을 때 얽매이게 되면 시의 노예가 될 뿐이요, 학문을 할 때 얽매이게 되면 학문의 노예가 될 뿐이다.

무슨 말인가. 비록 성인(聖人) 공자의 책을 읽고 배우더라도 공자에게 얽매이게 되면 공자의 노예가 될 뿐이다. 비록 대문장가 사마천의 『사기』를 배우고 익히더라도 사마천에게 얽매이게 되면 사마천의 노예가 될 뿐이다.

비록 시성(詩聖) 두보의 시를 배우고 익히더라도 두보에게 얽매이게 되면 두보의 노예가 될 뿐이다. 비록 대학자 주자의 학문을 배우고 깨우친다고 해도 주자에게 얽매이게 되면 주자의 노예가 될 뿐이다.

그것은 공자의 책을 혹은 사마천의 글을 혹은 두보의 시를 혹은 주자의 학문을 흉내내거나 모방하거나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얽매이는 곳 없이 마음대로 떠다니는 맑은 구름처럼 자유롭고 활달해야 한다. 이래야만 공자의 책을 읽어도 공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고, 사마천의 글을 배워도 사마천에게서 벗어날 수 있고, 두보의 시를 익혀도 두보에게서 벗어날 수 있고, 주자의 학문을 배워도 주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공자에게서 벗어나고, 사마천에게서 벗어나고, 두보에게서 벗어나고, 주자에게서 벗어나는 그 지점에 자신만의 깨달음이 있다. 득오(得悟), 진실로 깨달아 얻는다는 것은 바로 그와 같아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