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물(觀物)…바라본다는 것
상태바
관물(觀物)…바라본다는 것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2.15 07: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덕무 詩의 온도](61) 기장을 쫓는 참새와 여뀌에 서 있는 푸른 벌레를 보고서 장난삼아 쓰다

높은 갓 쓰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이덕무           李子高冠坐基危
맑은 가을 약초밭 고요한 시절                      淸秋藥圃肅然時
기장 매달린 참새 오르락내리락 쪼아대고         崎嶇黍雀懸仍啄
여뀌 기댄 풀벌레 애타게 울어대네                 熬煎蓼虫咽以非
보잘것없는 참새 풀벌레도 조화 따를 줄 아는데   微物亦知歸造化
덧없는 인생 하는 일 없이 보낸다고 원망말라     浮生莫怨費營爲
텅 빈 정자 한번 웃고 하늘빛 바라보니             虛亭一笑看天色
하도(河圖) 낙서(洛書) 좌우로 따르네              河洛圖書左右隨
『영처시고 2』 (재번역한 것임)

[한정주=고전연구가] ‘관물(觀物)’은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왜 사물을 바라보는가?

모든 사물은 제각각 자기 나름의 이치와 가치를 갖고 있다. 사람은 관물을 통해 사물의 가치를 사물의 이치로 인식한다. 사물의 이치를 인식한다는 것은 곧 사물이 각기 지닌 가치를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물의 이유는 사물의 이치를 인식해 사물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데 있다. 단순히 사물을 보지 말고 사물의 이치를 봐야 비로소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관물이란 사물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고 마음이 아닌 이치로 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낫고, 이치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것보다 낫다. 이치로 사물을 바라보면 환히 통하여 보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관물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등(下等)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고, 중등(中等)은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고, 상등(上等)은 이치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눈으로 보면 한 가지 사물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보면 한 가지 사물 밖의 다른 사물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치로 사물을 보면 ‘일이관지(一以貫之)’, 곧 한 가지 사물로 만 가지 사물을 환히 꿰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